[잠깐묵상] 예배인가? 공연인가?

아모스 6장

“제가 마치 다윗이나 된 듯 악기를 새로 만들고 거문고를 뜯으며 제 멋에 겨워 흥얼거리는 것들”(암 6:5, 공동번역)

그들은 다윗이나 된 것 마냥 새로운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며 춤추고 노래했습니다. ‘다윗도 이렇게 예배했으리라’ 생각하며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다윗과 같은 예배자, 다윗이 시도한 예배팀, 다윗이 드렸던 예배, 그렇게 그들의 행위는 여러모로 다윗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예배를 경멸로 일갈하십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의 모양새는 다윗과 흡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중심이 달랐던 게 분명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윗 같은 예배자가 나왔구나!’라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 눈에는 그저 제 감정에 취해 흥얼거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처럼’이라는 말, 이 표현은 오늘날 수많은 예배인도자와 예배팀 사이에서 즐겨 사용됩니다. 예배에서 음악적 파트와 관련된 많은 팀이나 리더들이 다윗을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연구하고 다윗의 노래를 재현하려 애씁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진솔하게 점검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음악적 욕구를 예배 가운데 실현하기 위한 근거로 다윗을 끌어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음악적 욕심을 정당화하는데 있어 다윗의 이야기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멋을 흉내내고 싶은 마음을 다윗을 흉내낸 것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음악적으로 탁월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만들기도 하고 수집하기도 했던 방대한 양의 시편에 비해 당시 사용했던 멜로디와 장르, 음악적 요소들에 관한 정보는 이상하리만큼 남겨진 것이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남기지 않은 것이든, 역사 속에서 유실된 것이든 제 감정과 멋에 취할 여지는 남겨진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얼마나 멋진 분인지를 드러내는 부분만 남겨졌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찬양 속에 전시된 하나님을 감상하고, 영상 속에 편집된 하나님을 시청하고, 설교 속에 가공된 하나님을 소비하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연장에 가서도 느낄 수 있는 전율과 감동을 단지 예배라는 형식 속에서 느낀 것을 가지고 “은혜 받았다”고 말한다면, 유명 공연장의 VIP석과 R석에 앉은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예배자일 것입니다.

‘다윗처럼’이라는 말, 이 표현은 오늘날 수많은 예배인도자와 예배팀 사이에서 즐겨 사용됩니다. 예배에서 음악적 파트와 관련된 많은 팀이나 리더들이 다윗을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연구하고 다윗의 노래를 재현하려 애씁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진솔하게 점검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음악적 욕구를 예배 가운데 실현하기 위한 근거로 다윗을 끌어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사진은 ‘치터를 연주하는 다윗왕’, 안드레아 첼레스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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