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돈값과 피값
아모스 2장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암 2:6, 새번역)
아모스 2장은 판결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적하신 중대한 범죄는 이스라엘이 사람을 돈으로 매매하는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의인은 은값, 가난한 사람은 신발값에 팔렸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했습니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요? 2,700년 전에는 특별한 상황에서, 특정 계층에게 값을 매겼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몸값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연봉이나 월급,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값입니다. 이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가격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격을 가지고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열심히 판매합니다. 재능과 노동과 시간과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구매합니다. 잘 팔리면 몸값이 오르고, 안팔리면 몸값이 내려갑니다.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 몸값이 결정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자신의 가격을 올리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 됩니다. ‘내 몸값은 얼마인가?’, ‘쟤 몸값은 얼마인가?’ 이것이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는 동안, 재물이 주인 자리를 차지했고 인간은 재물을 섬기느라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몸값을 지불하신 사건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Τετέλεσται” ‘다 이루었다’, ‘다 지불되었다’는 뜻입니다. 얼마를 지불하셨을까요? 자기 아들의 목숨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몸값입니다. 이 몸값은 영원히 동결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로 서명하셨기 때문에 누구도 변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나에게 매기는 가격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세상이 평가한 내 몸값이 좀 적다고 주눅들거나 반대로 몸값이 좀 올랐다고 우쭐하지 않습니다. 또한 누군가의 가격을 보고 그 사람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지불된 예수님의 목숨값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