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고통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사람이 극심한 고난을 겪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고 그 하나님이 선하다면 나를 악한 상황 속에 어떻게 방치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쉽고 편한 결론입니다. 하나님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덜 고통스럽긴 합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인식보다는 내 아픔을 그저 아무 의미도 의도도 없는 우연한 사고로 인식하는 편이 덜 복잡하고 덜 혼란스럽습니다. 그동안 내가 믿어왔던 하나님은 하나의 착각에 불과했다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입니다.
한편으로 고통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확신입니다. 이것은 이중 고통입니다. 고통의 제곱입니다. 상황도 고통스러운데 버림받았다는 느낌까지 드는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입니다. 사람이 나를 버린 것이라면 하나님께 위로라도 구하겠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면 누구에게 가서 어떤 위로를 구해야 할까요?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 15:34)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경험하신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아픔이었습니다. 치료할 길이 없는 아픔입니다. 그 어떤 탁월한 심리상담가도, 그 어떤 위대한 치유 사역자도 십자가의 아픔을 씻어줄 수는 없습니다. 죽음을 향해 안내하는 고난이고 죽어야 끝이 나는 아픔입니다. 아픔을 아파하고 고통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십자가에 못박힌 이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이 아픔은 오직 부활을 통해서만 해결됩니다. 부활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건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상처와 치유 주위를 배회하던 인생의 궤도를 죽음과 부활이라는 궤도로 바꾸어 놓습니다.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것처럼 내 삶의 중심이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신앙입니다. 중심이 달라지면 궤도도 바뀝니다. 나 중심으로 그리던 상처와 치유라는 에피사이클이 폐기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리는 전혀 새로운 궤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아가 죽을 때,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게 아니라 나의 자기중심성을 폐기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