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영적 감수성’의 회복
시편 8편
하루 종일 양들을 이끌고 꼴을 먹이러 다니는 것이 다윗의 어릴 적 일이었습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잠시 누워서 숨을 고르는 다윗의 눈 앞에 펼쳐졌던 아름다운 자연을 한번 상상해 봅니다. 다윗이 들에 누워서 봤던 밤하늘은 또 어땠을까요?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 중에 가장 어두운 별이 6등성인데, 우리가 지평선 위에서 볼 수 있는 6등급 이상의 별들이 약 4,000개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밤하늘의 어둡기가 이상적으로 칠흑같아야 볼 수 있는 별의 개수입니다. 오늘날 이정도의 별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장소는 지구상에 많지 않습니다. 반경 수십km 안에 인간이 만들어내는 야간의 조명이 하나도 없어야 하고, 게다가 미세먼지나 공기오염도도 0에 가까워야 합니다. 우리가 특별한 시간을 내서, 특별한 장소에 가면 볼까말까한 밤하늘을 다윗은 매일 마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다윗에게 이 아름다운 노래들을 불러준 건 그 하늘의 달과 별들이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칠흑같은 밤하늘과 은하수를 본 적이 언제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여유롭게 밤하늘을 우러른 것이 언제였나요? 달과 별을 보고 경탄하며 전율해 본 적은 언제인가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창조주의 걸작에 반응하는 영적 감수성입니다. 그 감수성은 다 잃어버린 채 바쁜 일정의 틈사이에서 겨우 하나님을 느끼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원래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시 19:1). 그러나 지금은 밤의 휘황찬란한 조명과 인간이 욕심을 채우느라 만들어낸 미세먼지가 그 영광을 가려버렸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가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많은 사람들이 보며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노래할 수 있는 날이 다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쓰레기로 버려질 전도지를 수천 장씩 뿌려대는 것보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 하나를 더 줍는 것이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전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