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터가 무너져가는 세상
시편 11편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시 11:3)
주권, 영토, 국민은 국가의 3요소입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주권과 영토를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남아 있었기에 주권도 영토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국민이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출산율 0.65는 국가 자살행위라는 말도 있습니다. 국민이 사라지면 아무리 좋은 금수강산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없는데 주권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터가 흔들흔들합니다. 시편 11편 3절을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 이 마당에 의인인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국가의 중요한 기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땅을 빼앗겨도 살았습니다. 주권을 빼앗겨도 견뎠습니다. 그런데 무슨 기초가 흔들리기에 사람이 사라지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일까요?
인간의 인간됨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본능과 자기부인의 의지입니다. 자기중심성은 무의식적 욕구이고, 자기부인은 의식적 의지입니다. 이 둘은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인간 존재 안에서 결합된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마치 자석에 양극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기부인의 의지가 붕괴되어 가는 것이 이 시대의 불안입니다. 인간이 자기중심성만으로 버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기부인의 기둥을 허물고 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 자기를 성취하다가 자기 착취적, 자기 도취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회 전체가 자기 중독증을 앓고 있습니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티즘이 제거된 캐피탈리즘의 모양새입니다. 터가 무너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예수님은 터를 닦으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마련하신 터는 십자가입니다. 나 살자고 발버둥치다가 남도 죽이고 나도 죽는 삶이 아니라, 남 살리려고 내가 죽었더니 다같이 살고 영원히 산다는 것을 보여주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이 시대에 아무도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을 때, 누가 먼저 십자가를 져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