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과학시대 신앙생활
욥기 38장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욥 38:29)
욥기 38장은 온통 질문입니다. 욥과 세 친구를 향해 하나님이 던지시는 질문이지만, 동시에 인류가 오랜시간 씨름해 왔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삼라만상의 이치와 신비에 다가가기 위해 인간은 부단히도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현대에 이르러 과학은 만물의 이치에 관하여 상당한 부분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8장에 나온 질문들에 대해 욥과 세 친구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현대의 과학자들은 할 말들이 좀 있을 겁니다. 과거에는 신비의 영역,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부분들이 이제는 인간의 이성이 접근 가능한 영역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설명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나 활동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기독교는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활동과 존재를 입증해보려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도리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예로, 옛날에는 천둥과 번개가 치는 이유를 하나님의 분노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과학이 발전하면서 천둥과 번개가 치는 현상을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유신론에 대한 설명이 오히려 무신론의 증거로 전락하는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4세기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모호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우리의 믿음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여러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성경 본문들이 있다. 그런 경우, 황급하게 달려가 한 쪽 편에 확고히 서지 마라. 진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우리의 선택이 실수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 위에 쌓았던 신앙도 함께 쓰러지게 될테니”
과학시대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이성의 빈틈에서 서식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셨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자연과학이, 심리학과 뇌과학과 사회과학이, 빅데이터와 AI가 온 세상을 빈틈 없이 설명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해가 뜨는 현상은 과학만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우리는 오늘 하루를 하나님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무언가 든든한 논리 위에 신앙을 구축해보려는 시도와 세상의 강력한 학문으로 진리를 변증해보려는 시도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일과도 같습니다.
신앙을 확고한 무엇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신앙 위에 확고히 세우는 것, 그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