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역대하 16장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대하 16:10)

사람이 매일같이 꾸준히 무언가를 오랜 시간 지속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심삼일이나 용두사미와 같은 말이 괜히 있을까요? 우리 삶에는 언제나 변수가 발생합니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늘 생기기 마련이고 그 변수에 의해서 그동안 유지해오던 태도나 삶의 방향성에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 헤어질 것을 마음 먹고 결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변함 없이 사랑할 것을 약속하고 믿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만 처음의 그 결심을 흔들어 놓는 변수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랑뿐일까요?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종 세간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교회나 목사의 얘기가 있습니다. 그 교회나 그 목회자가 처음부터 그랬겠습니까? 처음은 늘 좋습니다. 문제는 그 태도와 마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유다 3대 왕인 아사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 신실했습니다. 어머니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자 태후를 폐위하기까지 할 정도로 그는 신앙을 지키는 부분에 있어서 단호하고 확실했습니다. 그런 태도가 한 두해 지속된 것도 아니고, 10년, 20년 지속된 것도 아닙니다. 무려 35년 동안이나 아사는 한결같았습니다. 강산이 세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에 변치 않은 한결같은 사람, 어떻습니까? 그런 사람이 우리 주위에 있다면, 우리는 그를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아사 왕은 즉위 후 36년이 되면서 사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처음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35년 동안 한결같았던 사람도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앙이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입니다. 최고의 발전은 뭘 더 하는 것이 아니라 첫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큰 성숙은 없습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초심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늘 한결 같으려면 매일 매일 새로 시작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바울은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평생 하는 것이라기보다 오늘 하루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일평생이 마치 오늘 하루에 달려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앙이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입니다. 최고의 발전은 뭘 더 하는 것이 아니라 첫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큰 성숙은 없습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초심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사진은 2021년 8월 2일 도쿄올림픽 여자육상 1500m 예선 마지막 바퀴에서 시판 하산(오른쪽·네덜란드)이 케냐 선수와 부딪혀 넘어졌으나 끝끝내 1위를 차지하는 장면.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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