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성전 뜰만 밟고 드리는 기도
역대하 6장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대하여도 그들이 주의 큰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대하 6:32)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을 ‘할례 받지 않은 자’라고 불렀습니다. 상종 못할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방인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할례 받지 않은 자의 기도도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격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질을 보고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할례를 받은 자의 기도와 할례 받지 않은 자의 기도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리는 사람의 기도와 비둘기를 제물로 드리는 사람의 기도에 순위를 매기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순위를 좀 매겨주셨으면 할 때도 있습니다. 수송아지와 비둘기를 동일하게 취급하시면 소를 드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힘빠지지 않겠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의 성취감이나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도 하나님께서 우열을 가리시고, 번호표도 발급하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 나와 같은 혜택을 누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와 동급으로 취급받는 것에 기분이 언짢은 것입니다.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마 20:10-12)
우리는 우열이 가려져야 마음이 편한 경향이 있습니다. 등급을 매기고 분류를 하고 서열을 정리해 놓으면 질서가 잡혔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는 전혀 새로운 질서를 깨닫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재편된 질서에 순종하는 자리가 기도의 자리입니다.
이방인은 성전에 출입이 불가능했습니다. 기껏해야 이방인의 뜰 정도를 밟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전 뜰만 밟고 가는 사람의 기도에도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 드리는 기도와 성전 바깥에서 드리는 기도를 구분하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역대하 6장 32절 말미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우리는 성전의 뜰을 밟고도 하나님을 향할 수 있고, 성전 안에 있어도 하나님과 반대 방향을 향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