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나는 어떤 숫자를 어떻게 세면서 살아가고 있나?
역대상 21장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1)
사탄이 다윗을 충동했습니다. 다윗은 사탄의 충동이라고 느꼈을까요? 만약 그가 사탄의 충동이라고 인지했다면 인구조사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매년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국가의 병력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국방 사업에 신경을 쓰는 일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이유와 필요라는 연막전에 능통합니다. 사탄은 그 일을 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하고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일합니다. 이유와 필요만 제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인간 스스로가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심지어 사명이라는 프레임을 짜고 어느새 그 일을 하나님의 일로 둔갑시켜 버립니다. 인간이 얼마나 자기 합리화에 천재적인지 사탄은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사탄을 숭배하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사탄을 섬기라 하지 않습니다. 사탄의 관심은 사람들이 사탄 숭배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네가 신이 되라”, “너 자신을 섬겨라”, “너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속삭일 뿐입니다. 에덴동산의 뱀은 하와에게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탄의 목적은 인간 스스로가 자기를 숭배하는데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 존재감을 증명해 줄 근거가 필요했습니다. 숫자야말로 반박하기 어려운 객관적인 데이터입니다. 자기 존재감, 자기 실적, 자기 성과를 어필하는데 숫자보다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요? 숫자의 매력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좋아요, 구독자, 조회수, 시청률과 같은 숫자는 이제 가장 민감한 숫자가 되었고 세상을 움직이는 숫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숫자를 어떻게 세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 숫자와 나를 얼마나 동일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숫자와 그 사람을 얼마나 동일시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다윗에게는 인구조사 결과값이 곧 자기였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셀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성경을 몇 번 읽었나? 금식을 며칠까지 해봤나? 헌금은 얼마를 하나? 몇 명이 출석하는 교회인가? 몇 명을 전도했나? 몇 년 믿었나? 몇 대째 신앙인가?
세어보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역대상 후반에는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며 마련한 재료와 인력의 숫자 데이터가 잔뜩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하나님이 이런 분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우리의 동기를 면밀하게 들여다 봐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