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복수와 용서, 그 사이에서
창세기 45장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8)
형들이 동생을 팔았습니다. 원래는 죽이려고 했습니다. 열 일곱 살의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요셉은 불과 어제까지 아버지의 사랑 받는 아들로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노예로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봤을까요?
요셉은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곳에서 노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인지되었을 때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매일, 매순간 이를 악물고 버티고 견뎠을 것입니다.
정신 없이 휘몰아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노예 숙소에 누울 때면 무슨 생각이 났을까요? 제발 살려달라는 간청을 비웃으며 무시했던 형들의 표정과 자신의 가격을 흥정하는 형들의 목소리가 매일 밤 악몽처럼 그를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살다보니 살아졌습니다. 노예 생활도 이제 익숙해지고, 보디발의 신임도 얻어서 지낼 만해졌습니다. 긴 악몽이 이제 좀 끝이 나려나 했는데 그의 인생에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감옥이었습니다. 노예만도 못한 죄수가 된 것입니다. 열 일곱 살에 느꼈던 구덩이의 찬바닥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치가 떨릴 만큼 형들이 밉지 않았을까요?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까?
참 신기합니다. 형들에게 복수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넘쳐나는데 요셉은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용서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창 39:21)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동안 무슨 일을 하셨는지 이해가 갑니다. 분노가 요셉을 삼키지 못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우울과 절망에 요셉이 휘말리지 않도록 지켜주셨습니다. 매사에 심사가 꼬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자기 인생이 도대체 왜 이 모양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것이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야말로 요셉이 경험한 최고의 형통입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