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기회가 사라진 자리엔 후회가 남습니다”
창세기 42장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창 42:21)
미운 사람이 사라질 때 미움도 함께 사라지면 참 좋겠지만 미워하는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서 내 안의 미움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사라지면 맘 편할 줄 알았던 형들은 22년이란 세월동안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았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없어질 때 미움을 해결할 기회도 함께 사라져버릴 줄은 그때는 몰랐을 것입니다.
기회가 사라진 자리엔 후회가 남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후회하고 있던 그들에게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화해할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용서는 혼자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22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요셉은 이미 형들을 용서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화해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미워했던 그가, 나를 미워했던 그가 내 눈 앞에 있어야 가능한 것이 화해입니다.
형들에게도, 요셉에게도 이제 그 기회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습니다. 화해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린 쪽은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기회를 지혜롭게 붙잡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도 이 시간이 기회일 수 있도록 조심스레 다가갑니다.
자신이 요셉이라는 것을 형들이 알게 되었을 때 형들이 느껴야 할 죄책감과 수치심, 공포심이 어떨지를 알기에 요셉은 먼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형들을 대합니다. 형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3일 동안 갇혀서 지난 세월 숨겨왔던 미안함과 후회에 직면하고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사실 이것은 요셉과 형들의 이야기를 너머 하나님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자마자 그 죄를 해결할 방법부터 제시하셨습니다. 용서는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미 끝난 일입니다. 하나님에게 등돌린 인간을 용납하시기로 하나님은 이미 결정을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용서를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나의 죄성에 직면하고 하나님의 용납을 나도 용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