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물에 녹아내린 세상에 무지개 하나
창세기 8장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창 8:13)
코로나 유행 초기, 모두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던 무렵, 사람들이 집에 갇혀 있다시피 하며 몹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한정된 공간에서 24시간을 함께 지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몸소 경험했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서 함께 지낸 시간이 장장 1년이 넘습니다. 방주 안에서 그들은 1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누군가 밥은 챙겨야 했을 것입니다. 거대한 방주를 관리하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1년을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서 가족끼리 충돌하는 일이 한두 번이었겠습니까? 방주라는 공간이 주는 폐쇄감이 서로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한편으로 노아의 가족들은 익사한 사람들의 시체가 떠다니는 바다에 함께 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아마도 상당히 많은 시체를 마주해야 했을 것입니다. 항공기 사고 생존자들은 대부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살아남은 것이 다행인 동시에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술을 마셨던걸까요? 술에 취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만큼 홍수 이후 펼쳐진 광경은 비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주 안에서 노아의 가족은 자신들의 인격과 자아가 완전히 녹아내리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또한 방주 바깥에서는 물에 녹아내린 세상을 마주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쌓은 예배의 제단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적어도 환호성 섞인 축제의 예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물에 수장되었던 세상에 대한 장례식을 치르는 기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는 축복받은 땅에서 인생을 시작했다면, 노아는 심판받은 땅에서 인생을 새출발해야 했습니다.
홍수 사건을 읽으며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구원을 경험한 노아가 가장 처음으로 마주해야 했던 현실은 결코 핑크빛이 아니었습니다. 초토화된 상황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노아는 구름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무지개를 본 것입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창 9:16)
하나님의 이 언약만이 소망인 상태, 그것이 바로 노아가 경험한 구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