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그리스도인의 자기 소개
창세기 24장
“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창 24:34)
사람이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가면 이름이 박탈됩니다. 감옥에 가면 죄수는 이름 대신에 번호를 부여받습니다. 이름으로 불릴 자격을 박탈당하는 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름이 불리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는데 이름을 부르자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유명한 시도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이름은 그저 표식이 아닙니다. 존재의 의미를 가득 품고 있는 것, 그것이 이름입니다.
창세기는 이름이 유독 많이 나오는 책입니다. 창세기 중간 중간에는 사람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족보가 등장합니다. 무려 9개의 족보에 사람 이름만 수백 명입니다. 야곱이나 요셉처럼 이 땅에서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가 기록으로 남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이름 한 단어만 남긴 채 그가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다가 떠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찌됐건 이름 하나는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중대한 역할을 맡았지만 도무지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창세기 24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이 종은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활약이 장장 67절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 한 번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성경도 그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이것이 그가 자기 스스로에 대해 소개한 전부였습니다. 성경의 한 구절로 남은 그의 짧은 자기 소개를 가만히 묵상해 봅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할 수 있는 자기 소개의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엔딩 크레딧 끄트머리 한 구석에 자기 이름을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 세상 일을 할 때나 필요한 노력입니다.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시켜 주셨다는 것, 그 자체를 영광스럽게 여기는 분들이 지금도 많이 계시는 줄 압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겨서 사람이 기억 못할 뿐이지 하나님이 영원히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