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아벨’을 제물 삼은 ‘가인’
창세기 4장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창 4:6)
하나님은 가인에게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질문하셨습니다. 분노의 원인을 물어보신 것입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무언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관심도 없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일에 절대 화를 내지 않습니다. 아니, 화가 나지 않습니다. 음악에 아무 관심이나 애정이 없는 사람은 연주자의 박자가 어긋나든 음이 맞지 않든 거슬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면 충분히 화가 날 만한 일입니다.
가인에게는 뭐가 중요했던 것일까요? 가인은 예배를 드리고 나서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자신의 예배에 무언가 부족함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는데, 자신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가인에게는 예배가 중요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예배의 결과가 어떻든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화가 난 것으로 보아 그에게 예배는 중요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가인이 예배에 굉장한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동생을 죽인 행동을 통해서 그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났습니다.
가인에게 예배는 일종의 무대였습니다. 자신의 열정과 존재감을 뽐내는 무대 말입니다. 그 무대 아래에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라는 관객으로부터 박수와 인정을 받아야 만족했습니다. 하나님의 박수와 인정이 옆 사람에게 향한다는 느낌이 들면 그는 견딜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겉보기는 그가 하나님께 예배드린 것 같지만, 그의 본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예배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물뿐만 아니라 예배자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배자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롬 12:1). 나를 죽여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내가 죽어야 할 예배의 자리에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누군가가 나의 희생양이 되고 맙니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처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