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용’과 맞서는 ‘어린 양’
요한계시록 17장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 17:14)
계시록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공격하는 어둠의 세력들을 상징하는 여러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짐승이나 용과 같은 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들과 싸우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합니다. 용과 싸워서 이기려면 최소한 용보다는 강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그리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다지파의 사자와 같은 강력한 이미지로 그렸으면 모를까, 계시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공중 권세와 싸우고 있는 건 사자가 아니라 순하고 약한 어린 양이었습니다. 전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그러한 메시아의 모습을 예견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사 53:2-3, 새번역)
그리스도인의 싸움을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합니다. 싸움이 어떻게 선할 수 있을까요? 선한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전쟁이 상대보다 더 큰 힘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싸움을 걸어오는 방식에 똑같이 대응하며 휘말려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이 칼과 검을 가지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지만 예수님의 대응은 그들의 준비가 무색하리만큼 의외였습니다. 예수님은 져야 이기는 싸움, 십자가를 져야 승리하는 싸움을 시작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