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하나님과 더 가깝다고 과시하는 사람들
유다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유 1:1)
누구와 알고 지내는가, 누구와 친한가에 따라 될 일도 안될 때가 있고, 안될 일도 될 때가 있습니다. 단순히 ‘누구와 친하다’, ‘누구의 가족이다’라고 하는 것으로만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한편으로 누구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추천서 제도가 왜 있겠습니까? 누가 추천했는지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심지어 보증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계 자본, 관계 자원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관계 자원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태어나보니 아빠가 왕이라던가, 태어나보니 재벌집 아들이라던가 하는 경우입니다. 또한 자기 형제나 자매가 큰 성공을 거두어 사회적으로 저명인사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다서를 쓴 유다는 태어나보니 자기 형이 예수님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기 형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나중에 유다는 초대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보다 그를 더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는 고작 3년 예수님과 생활했지만, 유다는 거의 30년을 예수님과 함께 살았으니 예수님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동생 유다가 유다서 1절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텐데 그는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말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그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과 더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이단 사상을 가진 이들이 그랬습니다. 영적 체험이나 더 많은 지식을 과시하며 누군가를 자기 영향력 아래 두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생조차도 자기 스스로를 다른 모든 성도와 동등하게 여겼다면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과 더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은혜가 절실히 필요한 죄인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