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하나님의 첫사랑, 하나님의 짝사랑
요한일서 4장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랑할 때입니다. 심지어 악인도 사랑하는 순간에는 아름다워 보입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건,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 가장 행복한 건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순간에 하나님 그 자체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나 밖에 모르는 사람이 나를 잊어버리고 너에게 빠짐으로 나로부터 빠져나오는 신비한 현상을, 사랑할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받는 것과 가장 유사한 감격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우리는 하나님의 첫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시작은 짝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아도 삶이 바뀌는데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인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구원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해탈과 같은 종교적 경지가 아닙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존재와 인격적 관계를 맺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종교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21)
만약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우리의 종교 행위를 강행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모든 행위는 전부 위선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지극 정성일 때 부모는 그게 기쁘긴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형제 자매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부모에게는 더 큰 기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다가 형제와 다툰 일이 생각나거든 예배를 멈추고 가서 형제와 화해한 후에 예배를 드리라고 하시는 말씀에 대해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형제자매가 서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최고의 예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