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밥 먹자고 노크하시다
요한계시록 3장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동료, 지인을 떠올리며 이 구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가장 처음에 누구를 향해 하셨는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문 밖에 서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걸까요?
이 말씀은 비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문은 교회의 문이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성도의 마음 문입니다. 이상한 광경입니다. 교회된 성도 안에 좌정해 계셔야 할 분이 문 밖에 서서 노크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쫓겨나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와 성도가 예수님을 쫓아낸 것입니다.
찬송가 545장의 가사처럼, 그리스도인의 수치는 예수 믿으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도 교회가 부흥하고 인생이 성공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문을 왜 두드리실까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서 문을 발로 차며 ‘너 나를 이 따위로 대접하고 잘 되나 어디 보자’ 협박하지 않으시고, 그저 문을 노크하고 계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이 문을 강제로 열 능력이 없어서일까요? 문을 박살내고 들어오실 수도 있고,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천군천사가 출동대기중일 텐데 말입니다.
노크의 의미는 허락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자기 집에 들어가는데 무슨 허락이 필요하겠습니까? 하지만 이는 마치 부모가 자기 명의로 된 집이지만 자녀의 방에 들어갈 때 노크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그저 주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자발적 응답을 끝까지 기다리시는 인격적인 아버지이십니다. 강압적으로 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명분이 있더라도 상대의 동의를 구하고 허락을 기다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 마음의 문을 매 순간 두드리시는 소리에 나는 얼마나 반응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노크하시는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밥 먹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