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지역경제에 황금알 낳는 거위 ‘군사시설’

1. 변화 거부할 때 ‘디딤돌’은 ‘걸림돌’로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던 시절이 있었다. 카메라가 나온 마당에 낙서 같은 그림이 천문학적 가치로 평가되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졸음이 쏟아져 ‘좀비’가 되곤 했다.

시간이 지나 시대와 운명에 맞선 거장들의 투혼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색(色)과 형(形)으로, 눈으로 보는 것 너머의 감정과 관념까지 표현하는 미술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현대미술까지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을 들 수 있다. 팝아트 탄생에 영감을 주었고, 옵아트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후에는 <주어진 것>이라는 작품을 통해 설치미술의 초석을 닦았다. ‘보는 미술’에서 ‘머리로 생각하는 미술’을 제시하여 미술계에 큰 획을 그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던 화풍에 저항한 사조들이 있다. 표현주의,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등이다. 정점에는 ‘살롱 데 쟁데팡당'(Salon des Indepedants)라는 전시회가 있었다. 미술계에서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표현의 자유를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었다. 살롱 데 쟁데팡당에서 혁신의 아이콘인 아방가르드(Avant-Garde)마저도 출품을 거절한 작품이 있다.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Ⅱ>이다.

현대미술에서 마르셀 뒤샹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살롱 데 쟁데팡당의 결정은 충격적 사건이다. 입체주의에 ‘움직임’을 담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방가르드가 새로운 미술의 입지를 다지게 되자, 이제는 또 다른 표현의 자유를 거부한 ‘걸림돌’이 되어버린 탓이다

포천시 영중·창수·영북면 일원에 자리한 영평사격장. 면적 1322만㎡로, 여의도의 4.5배에 이른다. <사진 연합뉴스>


2. 군사시설, ‘갈등’ 관점에서 이전(移轉)만을 고수하면 지역발전의 ‘걸림돌’이 된다.

군사시설과 관련하여 ‘디딤돌’이 ‘걸림돌’이 된 사례로 강원도 원주시를 들 수 있다. 원주시에는 1954년부터 제1야전군사령부가 주둔해 있었다. ‘국방개혁 2.0’에 따라 2018년 12월 31일부로 임무를 마감하기 전까지 원주시 노른자 땅에 주둔해 있었다.

원주시에는 제1야전군사령부 외에도 미군기지 ‘캠프 롱’ 등을 포함하여 소위 ‘알짜 땅’에 군부대가 주둔했던 터라 지역발전에 상당한 피해를 끼쳐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국방개혁에 따른 군사시설 해체와 이전은 지역발전에 큰 기대를 불러보았다.

한편, 원주시는 군사과학과 방위산업 유치를 위한 뛰어난 입지를 가지고 있다. KTX로 용산역에서 서대전역까지는 1시간 남짓 소요되지만, 청량리역에서 원주역까지는 5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지리적 접근성이 뛰어나다.

특히, 원주에는 軍 공항이 있으며, 일대에는 軍 훈련장 및 무기체계 시험장이 들어설 수 있는 부지가 충분하다. 내륙중심도시로서 관계인구(지역에 새롭게 이주한 ‘정주인구’나 여행이나 관광으로 방문하는 ‘교류인구’가 아닌 지역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한 모멘텀이 필요하던 차에 원주를 대전에 이은 ‘K-방산’의 제2메카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군사시설을 없애는 것이 지역발전을 위한 ‘디딤돌’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군 관련 시설 유치에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방위산업이 국가경제의 핵심동력으로 성장한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한 탓이다.

지난 6월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김진태 도지사가 첨단과학기술을 기반으로 강원지역의 획기적 발전을 천명했다. 그 중심에 원주시를 ‘군사도시’를 넘어 ‘첨단국방과학도시’로 바꿔나가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서 있다. 그런데도 ‘갈등’의 관점에서 군사시설 이전을 고수하던 입장이 이제는 지역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3. 군사시설, ‘상생’ 관점에서 유치를 희망하면 지역발전의 ‘디딤돌’이 된다.

경기도 포천시 역시 군사시설이 지역발전에 상당한 해를 끼친 곳이다. 영평사격장, 다락대훈련장, 승진훈련장 등 대부대 훈련장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기계화부대가 관내 도로를 따라 종횡무진 달리는 곳이어서 군 관련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러던 차에 제6군단을 포함하여 관내 여러 군부대의 해체가 발표되었다. 지역에서는 해묵은 숙원사업이 해결되어 크게 반기던 분위기였다.

한편, 시간이 흘러 방위산업의 존재감이 주목받자, 백영현 포천시장이 軍과의 상생을 위해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드론작전사령부’의 관내 창설에 대해 일부 반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이를 앞장서 달랬다. 군사시설 불수용 주장이 더 이상 지역발전의 ‘디딤돌’이 아닌 ‘걸림돌’임을 인식한 것이다. 지금은 지역 모두가 힘을 모아 ‘기획발전특구’를 활용한 ‘드론산업단지’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중이다.

4. 군사시설이 ‘미운오리새끼’가 될 수 있다.

최근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군부대 없어지자, 지역경제가 급전직하로 악화하고 있다. 병사 급여 200만원 시대가 열리면, 군부대가 주둔하는 지역에 상당한 활력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도 군사과학기술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방위산업이 국가의 기반산업이 되었다. 방산 인프라를 포함한 군사시설 유치가 지역 경제발전의 효자 노릇을 할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다.

군사시설이 지역 내에 존치하지 않는 것이 지역발전을 위한 더 이상의 ‘디딤돌’이 아니다.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해묵은 인식이 지역경제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군사시설이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지 지자체는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훗날 ‘백조’가 되어 다른 지자체로 날아가 버리면 크게 후회할 것이다.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이라 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