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자기 구원을 포기하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마태복음 27장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 27:42)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그들은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고 군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산헤드린 회의석상에 나타나셨다면 어땠을까요? 빌라도 앞에 나타나셨다면 어땠을까요? 로마 총독 한 명 전도해서 생기는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했을 텐데, 예수님은 하필이면 당시 공신력도 없는 여자들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셔서 일을 복잡하게 만드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이 적어도 여러 기적들 중의 하나로 남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많고 많은 초자연적 현상들 중 하나를 믿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은 인류 역사에 늘 있어왔던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인정하는데 기적과 초자연적 현상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는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의 수 많은 순간들 속에서 신앙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능력을 좁디 좁은 기적의 틈에 끼워 넣지 않으셨습니다.

기독교는 자연의 틈새시장을 기적으로 공략하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기적 속에 갇혀있는 신이 아니라 모든 자연스러움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이 진정한 능력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그 순간은 기적적이겠지만 십자가를 지면 삶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무시했지만, 예수님은 남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구원을 기꺼이 희생하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기적적인 일인지를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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