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 칼럼] 국군의날 아침 강재구 소령과 ‘군인의 길’을 떠올리다

용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매진해야 하며, 그러하기에 선천적인 기질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하다 보면 용자가 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는 누구에게든지 항상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1965년 10월 파월 훈련 중 부하들을 구하고 산화한 강재구 소령의 소식을 전한 <전우신문>(현 국방일보) 기사.

진정한 용기란 과연 무엇일까? “진정한 용기는 자기에게 일어날 모든 손실을 감내할 어떤 각오 하에 외부로 발현되는 정의로운 기질”이라고 나는 정의하고 싶다.

혹자들은 나를 보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었다. 아울러 인간의 본질상 나도 어느 누구보다 겁이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용기에 대한 집착만은 매우 컸기 때문에 ‘용기와 관련된 문제’를 접하게 될 때마다 항상 내 자신에게 솔직히 물어보는 습관이 있다.

“최승우! 만약에 너라면 이런 경우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 했고 이에 대해, “아니, 자신 없다”라는 나의 솔직한 답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필요한 때와 장소에서 용기를 발휘하기 위한 평소 내 나름의 부단한 노력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평소 그런 의지와 행동 속에서’ 내 자신도 모르게 용기가 축적된다는 나만의 확신이 상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용기와 두려움(비겁함)을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했고 이를 ‘산이 험준하고 높을수록 그만큼 계곡은 깊다’는 자연의 이치에 비유했다. 즉, 용기 있는 사람일수록 거기에 비례해 두려움도 많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용기의 댓가는 자기 손해는 물론, 나아가 최악의 경우에는 소중한 생명의 위협 내지 손실에까지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특히 나의 오랜 군 생활체험 속에서 ‘자기보호 본능’에 의한 계산과 판단만 생각했다면 나는 어떤 용기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그 어떤 용기에 상응해서 그만큼 피해의식 나아가, 두려움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굳세고 씩씩한 기운의 용기와 어떤 손해 내지 피해의 두려움으로 인한 비겁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항상 공존하며 “용기나 비겁함의 선택 결과는 ‘순간 결정물’”이라 생각한다. 그 순간 생각과 판단에 이어지는 행동의 선택으로 운명의 길이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는 두려움이 용기보다는 많은 비중으로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용기가 이를 지배할 수 있음은 ‘내면에서 타오르는 그 어떤 양심의 생명력’이 불타고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은 통상 사명감에 의한 용기있는 행동과 두려움에 의한 비겁한 회피행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해타산의 삶’을 살아간다.

나도 어떤 용기를 발휘해야 할 경우 초를 다투는 경우가 아니면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어떤 ‘명분 또는 사명감과 실리 간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이런 가운데 용자가 되느냐 비겁한 자가 되느냐는 내 자신의 의식 무의식 간의 순간 선택에 달려있었다.

용기는 어떤 유무형의 피해에서부터 생명까지 버려야하는 엄청난 댓가를 요구하기에 역사상 위대한 용자들의 행동은 단순한 말과 생각만으로 쉽게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용기 발휘는 주로 짧은 순간에 표출되지만 이는 오랜 기간 ‘평소 지속적인 자기 성찰과 관리’의 노력과 함께 적립 축적되어 성장 발전해온 자신만의 ‘유무형 가치관 분출의 폭발적 현상’이며 이로써 ‘진정한 자기 모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 몸과 마음관리를 어떻게 철저히 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지만, 이는 마음과는 달리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항상 마음 속에서는 많은 갈등과 유혹이 들끓고 마음을 약화시키는 요소들은 잠자는 시간에도 활동할 텐데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경우 ‘진정 정의롭고 용기있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란 한 마디로 ‘변질이 안 되는 사람’이며 ‘진정한 강자’는 ‘정의의 편에, 억울한 자 편에, 약한 자 편에’ 앞장서는 사람으로 표현해 왔다. 과거 초급장교 시절, 한때 존경했던 선배가 어느 훗날 갑자기 이상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있을 때 나는 이러한 현상을 남의 일로 안 보고 장차 내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어느 누구나 계속되는 유혹의 공격에 굴복하면 그렇게 전락하고 마는 것이기에 자기 성찰, 자기 관리를 게을리 하면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한 사람으로 변질될 날을 분명히 맞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진정 훌륭한 사람이란 결코 아무나 되기 힘들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진정 행동으로 실천하며 부단한 자기 성찰과 노력을 통해서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와 같이 훌륭한 사람이 발휘하는 용기는 자기 수련을 통한 전문성과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 판단력, 사명감, 공익정신 나아가 국가관 등이 잠재의식 속에서도 차곡차곡 누적되어 자신만의 귀중한 소유물로 잘 간직되고 길러져 있다가 어떤 필요와 요구에 무의식중에도 과감한 행동으로 분출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용자勇者가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용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매진해야 하며, 그러하기에 선천적인 기질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하다 보면 용자가 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는 누구에게든지 항상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순간이나 기간 동안 사리사욕의 이해타산 면에서 계산된 용기라면 진정 참된 용기가 결코 될 수 없다. 진정한 용기란 평소 잘 관리되어 축적되어온 유무형의 귀중한 가치가 ‘양심의 절대명령’에 따라 ‘무의식중에도 고귀한 행위로 분출되는 현상’이어야 한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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