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아플 때는 아파해야 합니다”

“아플 때는 아파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임시방편입니다. 우리는 아픔 앞에서 고통을 해석한다며 너무 많은 기교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요? 고통을 억지로 해석하다가 오히려 우스꽝스러워진 신앙의 모양새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픔을 함께 붙잡아 주는 손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시편 60편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시 60:1)

회복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버려 흩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기쁨과 소망을 주시는 분도, 고통과 절망을 주시는 분도 동일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있는데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지만 ‘나라고 왜 고통을 겪지 않아야 하는가?’ ‘하나님에게 기쁨만을 요구할 자격이 과연 나에게 있는가’ ‘하나님은 나를 항상 만족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바람 잘 날 없었던 인생길을 걸었던 다윗, 그는 어떤 질문으로 살아냈을까요. 그의 노래들을 보면 후자의 질문인 것 같습니다. 내가 고난을 겪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그는 승리의 순간에 마음껏 기뻐하기도 했지만 절망적 순간을 고통 그대로 고통스러워할 줄 알았습니다. 고난을 노래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에게 고난은 피하고 극복하고 해석해야 할 일이기 전에 그 또한 주님이 주신 것이었기에 고통을 그저 아파했습니다. 골고다의 꼭대기에서 진통제를 탄 포도주를 거절하셨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졸릴 때, 잠으로부터 풀려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충분히 자는 것입니다. 그 외의 방법은 임시방편일 뿐,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졸게 됩니다. 잠을 깨기 위해서는 자야 하는 것이죠.

아플 때는 아파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임시방편입니다. 우리는 아픔 앞에서 고통을 해석한다며 너무 많은 기교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요? 고통을 억지로 해석하다가 오히려 우스꽝스러워진 신앙의 모양새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아픔의 시간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믿는다면 아픔을 그저 아파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이고 능력입니다.

다윗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 무엇이든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기에 받았습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예레미야애가 3: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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