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동남아에서 배우는 ‘야구 열정’
폭우 쏟아진 운동장 손수 정리하며 4시간 기다려 시합
4월말~5월초 태국에서 열린 제13회 동아시아야구대회에서 있었던 뒷얘기 하나 소개한다.
4월 30일 홍콩-라오스 경기가 있어 아침 10시 야구장으로 향했다. 오후 1시에 경기가 시작해 호텔에서 그 시각 야구장으로 출발했다. 호텔 출발 전 폭우로 인해 저지대가 잠길 정도였다.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이 처음 보는 태국 야구장이기 때문에 일단 야구장으로 출발했다. 열심히 가고 있는데 이번 대회를 주관하는 태국협회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선수들이 태국 야구장을 구경하고 싶다고 해 야구장에 도착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두 경기가 중지된 상태였다. 운동장은 물바다로 더이상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스탭들과 선수들이 야구장을 구경하고 호텔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태국야구협회측과 WBSC 주최측에서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으면 경기를 속행한다”며 호텔로 돌아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였다.
야구장에 도착해 4시간을 기다리니 태국협회측에서 조금씩 운동장 보수를 시작하였고, B구장은 경기에 아무 지장이 없도록 완벽하게 정리했다. 문제는 앞서 경기하는 필리핀 팀과 캄보디아 팀이었다.
이미 인필드 그라운드에는 물로 꽉차서 경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협회측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경기를 속행하기 위해 협회 직원들이 물통과, 스폰지를 들고 그라운드에 들어가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양팀 감독과 코치 그리고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에 들어가 순식간에 그라운드 정리를 마무리했다. 특히 야구 전문가인 양팀 선수들이 움직이니 한시간 이상 걸릴 작업이 단 30분만에 정리됐다.
야구장에서 무려 4시간 기다렸는데 선수들이나 스탭 그리고 이들을 이끌어 가는 대표단들도 지루할 만도 한데 어느 누구하나 불평하거나 화내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태국협회 직원으로부터 라오스 팀과 홍콩 팀 경기가 취소 되었다며 연락까지 한 상태였는데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화내거나 불평하는 사람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앞서 경기를 마친 필리핀 팀은 아예 덕아웃에서 공연까지 하며 무료한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장면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옆에 있던 제인내 대표가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조급함이 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에 내가 제인내 대표한테 “아침에 경기 취소하지 않았느냐? “고 했더니 그는 “이들은 야구가 하고 싶어 온 선수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야구장에서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홍콩 팀도 가지 않고 야구장에서 4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기다려서 게임을 했다.
이날 경기는 결국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속행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운동장에서 4시간 이상 기다리면서 어느 누구하나 태국야구협회에 불평하는 지도자나 스탭 한명 없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