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한국정치②] 대통령 행정입법권의 적정선과 자율적 통제

윤석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5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첫 임시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의원에게만 법률안 제출권이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도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법률안을 제출하려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 부서(副署)를 받아 대통령이 문서로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서란 대통령이 서명한 뒤에 국무위원이 서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도 의원 제출 법률안과 똑같은 절차로 심의 의결을 하므로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자체가 문제 되는 건 어닙니다. 국회보다 법률안 제출 건수도 정부가 많고, 가결율이 높은 것도 큰 문제는 아닙니다. 행정부 공무원 수와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보조·지원하는 인력을 견줘보면 당연한 수치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국회 통제를 받지 않는 행정입법입니다. 대통령령이라 불리는 대통령의 법규명령이 바로 행정입법입니다.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과 긴급명령은 행정입법이라기보다는 국가긴급권 성격이 강합니다. 헌법 보호를 위한 비상수단으로 법률을 고치거나 없애는 효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실명제가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도입되었습니다.

대통령령에는 위임명령과 집행명령이 있습니다. 위임명령은 헌법을 근거로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을 규율하는 법규명령입니다. 집행명령은 법률을 구체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적 사항에 관한 대통령령으로 법률의 시행세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령은 흔히 모법(母法)이라 부르는 집행할 법률에 없는 사항을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법률은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렇게 위임을 받아 대통령령을 제정하는데, 포괄적 위임은 할 수 없고 개별적 구체적으로 위임해야 합니다. 위임명령은 법률에서 위임받은 사항에 대해선 시민의 권리와 의무도 규율하는 등 기본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훈령 고시 통첩 등 행정명령도 넓은 의미의 행정입법에 속합니다. 행정명령은 행정 기관 내부에서만 효력을 갖는 업무처리규칙을 말합니다. 행정명령은 법률과 대통령령의 위임이 없어도 제정할 수 있습니다. 법규명령과 행정명령은 대통령뿐만 아니고 국무총리와 각부 장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도 제정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대통령의 포괄적 보좌기관이며 행정부 2인자인 국무총리는 그 소관 사무에 관한 총리령 제정권이 있습니다. 총리령은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에 따라 내리는 위임명령과 법률이나 대통령령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내리는 직권명령으로 나눠집니다. 총리령도 대통령령과 마찬가지로 위임이 없거나 위임 사항과 다른 내용을 담을 수 없습니다.

행정각부의 장도 부령(部令)을 제정할 수 있습니다. 부령도 위임명령 집행명령 행정명령이 있는데 국무총리가 제정하는 총리령과 행정각부의 장이 제정하는 부령 사이에 효력의 우열은 없습니다. 다만 국무총리는 행정감독권이 있어서 부령이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인정할 때 대통령을 승인을 받아 고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국회독점입법이 입법기술과 효과 면에서 여러 제약요인이 있어 행정입법이 허용된 겁니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도 행정입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지만 법률 집행의 세부적 사항이나 굳이 법률로 하지 않아도 될 사항은 행정입법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보면 행정입법권은 국회 입법권을 보완하는 역할도 합니다.

문제는 포괄적 위임을 하거나, 위임받지 않은 사항을 다루거나, 모법을 왜곡 굴절시키는 행정입법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2015년에 행정입법을 ‘국회의 검토’를 거치는 데 그치지 않고 ‘수정·변경 요청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고쳤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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