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한국정치③] 법사위 권한 조정해 여야 갈등 줄이길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의 기한을 제한하고 기한을 넘기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하자는 이상민 제19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의 제안은 적극 검토할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체계·자구심사를 하되 법안의 본질적인 내용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하든가, 법안 대표발의자의 동의가 없으면 원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19대 국회 하반기 이상민 법사위원장

제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자꾸 미뤄지는 건 법사위원장 문제 때문입니다. 흔히 ‘상원’ 또는 ‘국회 안의 국회’라고 불리는 법사위는 여야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상임위입니다. 그러다보니 여야는 서로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각 정당들은 이른바 ‘전투력이 강한’ 의원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합니다.

2021년 7월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제21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 재배분에 합의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맡았던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대선에 져 야당이 된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은 관행적으로 야당의 몫이었으므로 양보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법사위원회는 법무부, 법제처, 감사원 소관에 속하는 사항과 헌법재판소 사무, 법원·군사법원의 사법행정, 탄핵 소추 등을 담당합니다. 입법과 법무행정, 사법부를 담당하니까 권한이 매우 커서 여야가 법사위원장을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법사위가 법률안·국회 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체계·자구 심사권이 문제였던 건 법사위가 이 권한을 빌미로 다른 상임위에서 가결된 법안을 실질적으로 재심사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상임위의 권한을 침해해 법률안을 마음대로 고치는 바람에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법사위가 체계·자구심사를 아예 안 하는 바람에 자동 폐기되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법사위원장이 소속정당의 이해관계에 맞춰 법안 처리를 하거나 시간 끌기를 할 때도 체계·자구 심사권을 써먹었습니다.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의 소속정당이 같으면 법사위가 시간 끌기를 막을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소속정당이 다를 때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기도 했지만 국회선진화법이 있어 이제는 그러기도 힘들어졌습니다.

법사위 권한을 줄이자는 논의가 계속 있어왔습니다. 법제위원회와 사법위원회로 분리하자든가 체계·자구 심사를 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체계·자구 심사를 하지 않으면 위헌법률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도 위헌법률이 1년에 10여 건씩 나오는 실정입니다. 심사권을 유지하되 권한남용을 막을 방안을 찾아야 할 겁니다.

그래서 체계·자구심사의 기한을 제한하고 기한을 넘기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하자는 이상민 제19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의 제안은 적극 검토할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체계·자구심사를 하되 법안의 본질적인 내용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하든가, 법안 대표발의자의 동의가 없으면 원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합의안을 깨면서까지 법사위원장에 집착하는 건 여상규 제20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에 대한 불편한 기억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여 위원장 때 법사위에서 여야 격돌, 특히 위원장과 민주당 위원들 간의 말다툼이 잦았는데, 여 위원장이 민주당이 미는 법안은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상규 위원장은 법사위 권한을 축소하기로 한 여야 합의를 무시해버렸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법사위원장이 관행적으로 야당 몫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기존합의를 무시하는 게 정당성을 갖지는 못합니다. 또 여야가 바뀌었으므로 국민의힘도 기존합의만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기회에 기존 합의대로 법사위 권한을 조정하면 갈등이 줄어들 겁니다.

법사위 운영에서 그 동안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게 다 법사위의 탓만은 아닙니다. 여야가 맞서는 중요쟁점들은 법사위원들이 아닌 여야 대표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여야의 정치력 부족으로 합의를 못 이루니 법사위가 그 싸움터가 된 측면도 있습니다. 여야는 원 구성과 법사위 권한 조정 등을 전향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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