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국회의장 이야기④] “정치는 타협의 예술, 최악 막기 위해 악마와도 손잡아”

“타협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도 합니다. 타협은 이해당사자들끼리 서로 조금씩 양보하도록 조정해 중간지점에서 합의를 이루는 화해의 기술입니다. 이해관계가 다양한데 완전히 의견일치를 보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사쿠라라고도 불리는 벚꽃 <사진제공=태안군청>

영국 학자 시드니 베일리(Sydney D. Bailey)는 의회를 ‘민주정치의 안전판’이라고 불렀습니다. 의회의 본질을 “누적된 불만의 폭발로 사회적 보일러가 터져 국민에게 화상을 입히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의정활동은 여야가 대화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인 겁니다.

국회는 이해관계와 요구가 다양한 사회의 지역적 계층적 기능적 집단의 대표들로 구성됩니다. 지난 제20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는 연령별 성별에 따른 이해관계도 매우 첨예하게 드러났습니다. 국회는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로 나타나는 갈등을 민주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해소시키는 구실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의정활동이란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시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로 끌어들여 합의된 규칙에 따라 처리하는 걸 뜻합니다. 의정활동이 제대로 이뤄지면 사회 갈등이 극단적인 형태로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정당이 수렴해 국회를 통해서 해소시키면 사회 갈등은 완화되고 사회통합이 가능해질 겁니다.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는 방식은 사법적 처리, 중재, 협상, 중개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국회의 갈등 관리는 협상과 중개 등 대화를 통한 설득과 타협 방식 위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타협을 별로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선명성을 잃은 야당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어설프게 타협했던 기억 때문입니다.

타협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도 합니다. 타협은 이해당사자들끼리 서로 조금씩 양보하도록 조정해 중간지점에서 합의를 이루는 화해의 기술입니다. 이해관계가 다양한데 완전히 의견일치를 보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국에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모든 걸 타협할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될 것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시민의 생명과 인권 존엄성 등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들입니다. 민주주의도 다른 것들을 포기하더라도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그런데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시민과 민주주의를 포기하면서 사적인 이익이나 당파적 이익을 챙기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야당지도자들이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앞서기는커녕 현실에 안주하자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 또는 ‘사꾸라’라는 비아냥까지 나왔습니다. 보다 못한 김영삼 의원이 ‘40대 기수론’을 내세웠습니다. 야당 중진들은 ‘구상유취(口尙乳臭)’하다고 코웃음을 쳤지만 40대의 김대중 의원이 대선후보가 되는 등 시민은 양김(김대중 김영삼)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앞장섰고 원칙을 포기하는 잘못된 타협을 용납하지 못했던 김영삼 대통령도 국회의장을 존중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독재자만 국회의장을 수하로 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 대통령은 자신의 오랜 정치적 동지였던 황낙주 제14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1994.6.29 ~ 1996.5.29)을 마구 혼낸 일이 있습니다.

황낙주 의장은 1979년 김영삼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가 되자 원내총무를 지냈습니다. 신군부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했다가 정치규제가 풀리자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자마자 양김이 주도한 신한민주당으로 옮겼습니다. 1990년 3당합당 때도 김 대통령을 따라 민주자유당에 합류했고, 국회의장이 됐습니다.

1995년 민자당이 기초자치단체 선거의 정당공천 배제를 추진하자 야당이 이를 막으려 의장공관을 점거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경호권을 발동해 법안을 처리하라 요구했지만 황 의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김 대통령은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국회의장을 부하로 봤기 때문일까요? 오랜 정치적 동지에게 실망했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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