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국회의장 이야기⑤] 김진표 내정자에 거는 기대, 정치중립과 갈등조정
국회의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은 서로 동등한 형식적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초선의원도 다선의원도, 다수당 의원도 무소속 의원도 의사결정에서 똑같은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에서 자주 보이는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집단행동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라든가 시민의 요구나 뜻과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국회 안에서 국회의원들의 행동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당입니다. 같은 정당에 소속된 의원들은 의정활동을 정당의 정강정책에 맞추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의원 개개인의 지지기반이 되는 지역(선거구)이나 집단의 요구, 또는 의원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 등의 이유로 정강정책과 어긋나게 움직이는 의원들이 있습니다.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에 따르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면서 소속 정당이나 다른 의원들의 성과에 편승해 편익만 챙기려는 의원들도 있습니다. 이런 무임승차(free rider) 경향이 커지면 국회의 생산성이 낮아지고 시민의 비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정당 지도부나 국회 지도부는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최대한 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됩니다.
국회의 지도부느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단(위원장과 간사), 원내교섭단체의 원내대표단 등이 있습니다. 국회의장단은 국회 전반의 운영과 관리를 책임집니다. 상임위원장과 간사(ranking member)는 상임위원회의 운영을 책임집니다. 원내 교섭단체의 대표의원인 원내대표단은 정당의 원내전략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의장단과 원내대표단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합니다. 상임위원장단은 해당 상임위에서는 중요하지만 국회 전체의 운영과 관리에는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원내대표단이 아니어도 국회 운영에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비공식적 리더십이 있습니다.
대통령과 정당 대표 등이 국회운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공식적 리더십입니다. 특히 대통령의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했던 이른바 검수완박법(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윤석열 당시 당선인의 말 한 마디에 합의가 깨졌던 게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의원총회의 영향력도 큽니다.
국회의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순히 회의에서 사회를 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나라에 따라 국회의장의 지위와 역할에는 차이가 있지만 어느 나라나 정치지도자들이 의장직을 맡는 건 이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장에게는 입법부의 장으로서의 국회대표권, 의사정리권, 국회 안의 질서유지권, 사무감독권 등의 권한이 있습니다.
이런 공식적인 직무와 권한 말고도 국회의장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직무는 갈등중재자의 역할입니다. 원내에서 여야의 대립과 갈등이 심할 때 이를 조정 통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을 사실상 대통령이 지명했던 권위주의 정부 때에도 원 구성 문제가 정치협상의 대상이 되었던 건 이 때문입니다.
국회의장 선출 과정에서 언제나 제기되었던 문제는 정치적 중립성입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는커녕 독재자의 뜻에 맞춰 오히려 동료의원들을 탄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술경관을 국회에 투입해 야당의원들을 감금하고 국회의사당 정문을 폐쇄시킨 채 여당의원들만 출석시켜 법을 통과시킨 24보안법파동이 대표적입니다.
제16대 국회부터 국회의장의 당적보유를 금지했지만 그것만으로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박관용 제16대 후반기 국회의장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처리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김진표 국회의장 내정자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갈등중재자로서 좋은 역할을 하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