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국회의장 이야기③]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신속해야
박병석 국회의장의 임기가 만료되고 김진표 의원이 후임으로 내장되었지만 현재 국회의장직은 공석입니다. 국회법에 따른 선출 절차를 아직 밟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회법에서는 전반기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총선거 뒤 첫 집회일에, 후반기 의장은 전반기 의장의 임기 종료 5일 전에 무기명 자유 투표로 선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총선이 끝나고 5월 30일에 개시되므로 전반기 국회의장의 임기도 5월 30일에 개시되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국회의장 임기는 늦게 시작됩니다. 개원협상이 늘어지면서 5월 30일에 국회 문을 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후반기 국회의장도 임기가 5월 30일에 개시되는 경우가 드믑니다.
국회의원의 임기가 5월 30일에 개시되기 시작한 건 민주화 이후 첫 국회인 제13대 국회 때부터입니다. 제13대 국회는 임기 중 국회의장직의 공석 상태가 없던 유일한 국회입니다. 김재순 전반기 의장(1988.5.30 ~ 1990.5.29.)과 박준규 후반기 의장(1990.5.30 ~ 1992.5.29) 모두 임기가 5월 30일에 개시되어 2년 뒤 5월 29일에 만료됐습니다.
박준규 국회의장은 제13대 후반기 의장과 제14대 전반기 의장(1992.6.29 ~ 1993.3.30)을 연이어 했지만 중간에 30일의 공백이 있습니다. 제14대 전반기 의장의 임기가 1992년 6월 29일에 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제14대 국회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둘러싼 여야의 의견대립으로 국회의원 임기 개시 한 달이 지나서야 개원식을 했습니다.
제14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연임됐지만 박준규 의장은 불과 9달 만에 국회의장직을 사임했고 이만섭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어 박 의장의 잔임기간 동안 재임했습니다. 박 의장이 물러난 건 재산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추진한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로 박 의장의 많은 재산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재산 총액만 공개했는데도 재산이 문제가 되자 유학성 김문기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 문민정부 창업 공신으로 꼽혔던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의원직 사퇴를 요구받자 아예 정계를 은퇴했습니다. 김 의장은 정계를 은퇴하면서 “토끼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뜻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역시 의원직 사퇴를 요구받은 박준규 국회의장은 사퇴를 거부하며 ‘신을 신은 채 바닥을 긁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의 ‘격화소양'(隔靴搔痒)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민자당을 탈당하면서 의원직은 사퇴하지 않고 국회의장에서만 물러났습니다. 자민련에 합류한 박 의장은 제15대 국회 후반기에 세 번째 국회의장이 되었습니다.
재산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국회의장직을 떠났던 박준규 의장이 다시 국회의장이 된 건 국회의장을 임명직처럼 운영했던 정치적 관례 때문입니다. DJP연대로 집권했기에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총리와 박준규 국회의장으로 자민련을 배려했습니다. 직접 임명한 건 아니지만 김 대통령도 국회의장직을 임명직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영삼 대통령 김종필 총리와 함께 최다선인 9선의 박준규 제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은 사상 처음으로 3차 투표까지 실시한 끝에 당선되었습니다. 야당 한나라당이 제1당이지만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의석을 다 합쳐도 역시 과반의석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이기에 김진표 의원이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 될 겁니다. 그럼에도 선출이 늦어지는 건 후반기 원구성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갈등이 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국회의장이 아니라 상임위원장 배분문제, 특히 법사위원장을 어느 당이 맡느냐 하는 건데, 양당은 관련 논란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