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국회의장 이야기①] 차기 총선 불출마 선례 남긴 박관용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만섭, 박관용, 김원기, 정의화, 김형오, 임채정 국회의장

현재 국회의장직은 비어 있습니다. 박병석 제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2020.6.5.~2022.5.29)의 임기가 5월 29일자로 만료되었지만 후반기 국회의장을 아직 선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반의석의 더불어민주당이 이미 지난달에 5선의 김진표 의원을 내정했지만 국회 선출절차를 거치지 않아 아직은 국회의장이 아닙니다.

법사위원장을 어느 당 몫으로 하느냐를 둘러싼 여야의 갈등으로 국회의장 선출이 미뤄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장단 구성과 상임위원장 선출을 분리하자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함께 선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여야의 힘겨루기로 국회의장 공석 상태가 길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야는 후반기 원구성에 속도를 내야 합니다.

국회의장단은 자유투표로 선출됩니다. 무기명투표에서 득표수가 재적의원 과반수를 득표하면 당선됩니다. 1차 투표 결과 재적의원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2차 투표를 해야 합니다. 2차 투표에서도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득표자 2인을 놓고 결선 투표를 해서 1표라도 많이 받은 사람이 국회의장이 됩니다.

1차 투표에서 재적의원 과반득표를 못한 사례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 걸쳐 있던 제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출은 3차 투표까지 갔습니다. 원내 1당인 신한국당은 오세응 의원을, 공동여당은 자민련의 박준규 의원을 밀었습니다. 3차 투표에서 박 의원이 149표를 받아 139표의 오 의원을 누르고 국회의장이 되었습니다.

박관용 제16대 하반기 국회의장

형식은 자유투표지만 실제로는 당론투표였습니다. 종전에는 대통령이 내정하는 사람이 국회의장이 되곤 했습니다. 대통령이 내정하지 않은 국회의장은 제16대 국회 후반기 박관용 국회의장(2002.7.8~2004.5.29)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여당은 새천년민주당이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장은 야당 한나라당의 6선의 박관용 의원이 된 겁니다.

국회의장 선출 당일 재적의원이 261명이었므로 국회의장이 되기 위한 재적의원 과반수는 131표였습니다. 투표 결과 박관용 의원이 136표로 과반수를 5표 넘겨 국회의장이 되었습니다. 그날 투표에 참가한 한나라당 의원은 129명이었습니다. 적어도 7명 이상의 비한나라당 의원이 박 의원에게 표를 던진 셈입니다.

후반기 원 구성 협상과정에서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장을 공식 후보를 내세우지 않고 완전 자유투표를 뽑기로 정당들이 합의했습니다.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공식적으로 국회의장 후보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한나라당은 박관용 의원, 새천년민주당은 김영배 의원에게 투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체 후보 등록시 유일하게 등록한 6선 박관용 의원을 의원총회에서 국회의장 후보로 확정했던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로는 의원총회를 다시 열어 박관용 후보 내정을 취소한 상태였습니다. 김영배·조순형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던 새천년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김영배 의원을 국회의장 후보로 내정했습니다. 물론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순형 의원이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완전 자유투표를 해야 한다며 독자적으로 출마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나라당보다 의석수가 적었는데 표가 분산됐습니다. 조 의원은 6표를 받았고, 김충조 의원도 한 표를 받았습니다. 사상처음으로 자유투표를 하기로 3당이 합의했지만 결국은 옛날식대로 당론투표가 이뤄졌습니다.

제16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출은 비록 당론투표였지만 대통령이 내정하지 않은 첫 번째 국회의장이 등장했다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또 박관용 의장은 제17대 총선에 불출마했습니다. 이로써 법제화된 당적보유 금지와 더불어 당내 최다선 의원이 합의추대 형식으로 국회의장이 되고,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관례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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