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29] 선거를 움직이는 바람 민풍(民風)

무심한 것 같은 저 하늘은 2022년 5월 대한민국이 어떤지 다 내려다 보고 있을 터. 아울러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어떤 사람을 찍을지 정당들보다 먼저 그리고 정확히 판단하고 있을 터다. 

우리 정치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선거에 지나치게 종속된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총선거 등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선거는 물론이려니와 국회 의석 몇 개를 놓고 실시되는 재·보궐선거에서도 정당들은 총력을 기울입니다. 다섯 개의 선거가 온 나라에서 한꺼번에 실시되면서 수천 명을 뽑는 지방선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방선거가 지방의 의제를 놓고 ‘주민의 선택’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중앙정치의 의제를 놓고 ‘시민의 심판’이 이뤄지는 선거가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지방선거 때도 각 정당과 후보들이 갖가지 공약을 내세우지만 선거를 끌고 가는 건 중앙정치의 관점입니다.

2010년 6월 2일 실시된 제5회 지방선거도 중앙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방선거에서 시민은 임기의 절반이 지난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내렸습니다. 선거 전날까지도 한나라당의 승리가 점쳐졌습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측과 정반대였습니다. 한나라당의 참패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시민의 심판이 이뤄졌던 4년 전 선거와 판박이였습니다. 한나라당은 영남권과 기초의회를 뺀 나머지 선거에서 대부분 졌습니다. 16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6곳, 228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81곳 등 87곳에서만 이겼습니다. 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 7곳, 기초자치단체 91곳에서 한나라당을 눌렀습니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는 한나라당이 차지했지만 서울시의회와 경기도의회는 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을 확보해서 지방 차원에서의 여소야대가 만들어졌습니다. 4년 전에는 한나라당이 서울시의 25개 전 자치구를 차지했으나 겨우 4곳만 지켰습니다. 경기도의 31개 시군가운데 2006년 선거 때 30곳을 차지했으나 겨우 10곳에서만 이겼습니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는 참여정부 심판 분위기 덕에 한나라당은 16개 광역단체 가운데 12곳, 230개 기초단체 가운데 155곳에서 이겼습니다. 승패를 가름하는 서울·인천·경기 수도권을 휩쓸었습니다. 광역자치단체 3곳에서 다 이겼고, 기초자치단체는 경기도 구리시 단 한 곳을 뺀 나머지 65곳에서 이겼습니다.

수도권의 광역의회 선거도 한나라당 압승이었습니다. 지역구에서 단 한 곳도 지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시민의 심판이 이어져 한나라당은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 2008년 재18대 국회의원 총선거 등 3년 연속 치러진 전국단위 선거를 모조리 이겼습니다. 시민의 선택으로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약화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민의 기대에 어긋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운영을 비민주적으로, 독선적으로 했습니다. 한심한 한나라당은 거기에 끌려가고 있고, 나약한 민주당, 위축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이명박 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시민이 지방선거를 통해 경고의 옐로우 카드를 꺼내든 것입니다.

제5대 지방선거 일정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이 겹쳐 추모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친노 그룹이 대거 출마했고, ‘노무현처럼 일하겠다’고 했지만. 시민의 선택에는 반한나라당 반MB정서가 영향을 더 미쳤을 겁니다. 한나라당은 천안함 침몰을 부각시켜 북풍을 기대했지만 정부의 안보무능이 부각되었을 뿐입니다.

결국 표심을 가른 건 여당의 바람(願)인 북풍(北風)도, 야당의 바람(願)인 노풍(盧風)도 아닌 민풍(民風)이었습니다. 시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무능한 이명박 정부를 야당 대신 민풍이 견제를 한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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