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30] 정치혁신 가로막는 지방선거판 게리맨더링

게리맨더링으로 제멋대로 획정된 미국의 선거구. 181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만들었더니 괴물과 같은 모양처럼 되어버려 이를 조롱하며 빗대서 나온 말이다. 전설상의 괴물 샐러맨더(Salamander)와 비슷하다고 하여 앞에 ‘게리’를 합성해 게리맨더링이라는 용어가 탄생.

 

모두들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6·1지방선거에 적용될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이 끝났습니다. 획정결과는 ‘매우 실망’입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핵심인 3인 이상 선거구 확대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3∼5명을 뽑는 3인 이상 선거구는 488곳, 2인 선거구는 542곳으로 2인 선거구가 절반을 넘었습니다.

애초 각 시·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시·도의회에 제출한 선거구 획정안에서는 3인 이상 선거구가 510곳으로 498곳인 2인 선거구보다 많았습니다. 그런데 국회가 획정과정에서 선거구를 더 줄이는 방향으로 고친 겁니다. 마치 시범실시를 해당 지역만 실시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으로 오해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3.9대선의 화두 가운데 하나가 정치혁신이었습니다. 정치개혁 정치혁신 정치교체, 단어는 조금씩 달랐지만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후보, 심상정 후보, 사퇴한 안철수 후보 모두 ‘낡은 정치’를 바꾸자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역대 최소득표율차로 승패를 가른 ‘정권심판론’도 낡은 정치를 바꾸자는 민심의 표현이었습니다.

3.9대선에서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처음으로 의정활동을 경험하지 않은 후보들끼리 맞붙었던 것도 ‘바꾸자 민심’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정치입문 불과 몇 달만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재명 후보도 국무총리 국회의장 장관 등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변방의 사또’ 출신입니다.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도, 야당이 될 더불어민주당도 ‘바꾸자 민심’이 얼마나 강한지 뼈저리게 느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으레 그랬던 것처럼 대선이 끝나자마자 양당은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이전 문제나 첫 내각 후보 지명에서 보듯이 민심을 헤아리거나 정치혁신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촛불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 심판을 받은 더불어민주당도 정치혁신에 대한 초심이 시들해진 건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당들도 정치혁신을 이야기했지만 민주당은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를 손질하겠다는 구체적인 것까지 약속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의원총회까지 열어 대선 승패와 관계없이 추진하겠다고 결의까지 했습니다.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시간이 없다고 몽니를 부리는 국민의힘에게 공직선거법을 고치자고 계속 압박했습니다. 대선 승패와 관계없이 추진하겠다는 결의를 지키려는 ‘선의’로 보였습니다.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자 박병석 국회의장이 ‘시범실시 중재안’을 제시했고 여야는 11곳 시범실시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시범실시가 다소 아쉽고 11곳은 너무 적었지만 일단 종대선거구제 도입의 길을 닦은 셈이니 ‘절반의 성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치의 다양성, 다양한 정치세력의 지방의회 진출, 다양한 민의 수렴 등에 무관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거대양당이 악착같은 기득권 지키기에 제도 도입의 취지는 빛이 바래고 말았습니다.

두 당 모두 비판받아야 하지만 도입에 소극적이던 국민의힘보다 적극적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더 실망스럽습니다. 국민의힘이 다수당인 대구 경북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다수당인 곳에서는 3인 이상 선거구를 더 늘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지역에서도 2인 선거구가 늘어났으니 개혁의지를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불합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게리맨더링이라고 합니다.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가 선거구를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획정하면서 생겨난 말입니다. 이번 선거구 획정은 ‘지방선거판 게리맨더링’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시민에게 한 약속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하찮게 대하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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