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27] 선관위 선거관리 공정하고 상식 맞아야
2010년 제5회 지방선거를 평가할 때 핵심 키워드는 선거연합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 심판론을 하나로 모은 선거연합에 가려져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될 키워드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책선거입니다. 각급 선거가 정책 없는 선거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복지정책을 중심으로 정책대결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천안함 사태 등으로 지방선거 분위기가 가라앉아 낮은 투표율이 예상됐지만 광역단체장 선거를 기준으로 보면 2006년 지방선거보다 2.9% 높아진 54.5%로 15년 만의 최고투표율이었습니다. 야당, 시민사회와 풀뿌리 유권자단체 등이 4대강사업 반대, 무상급식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쟁점화시키면서 시민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투표율이 더 높아지지 못한 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운동을 규제해 주민의 더 많은 정치참여를 막는 바람에 그랬다는 평가들이 있습니다. 선관위는 4대강과 무상급식이 선거쟁점이 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과 관련된 시민단체, 정당, 종교단체 등의 찬성 반대 활동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한 겁니다.
선관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며 시민단체의 활동, 특히 정부 여당에게 불리할 것으로 간주되는 4대강 사업과 친환경무상급식 관련 활동을 사사건건 규제했습니다. 정부 여당의 유사한 행위에 대해서는 눈을 감거나, 경고하는데 그쳤습니다. 선관위의 편파적이고 이중적인 선거법 적용으로 양승태 선관위원장은 고발까지 당했습니다.
선관위가 선거의 최대 쟁점을 선거법 위반이라며 규제한 건 선거의 자유를 해치는 행위입니다. 정책경쟁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할 선관위가 오히려 가로막고 나선 건 잘못입니다. 선관위가 유권자를 규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국가권력의 선거개입을 막고, 정당과 후보자의 탈법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겁니다.
선거의 주체는 시민, 즉 유권자입니다.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가 쟁점이 되고, 쟁점을 둘러싸고 후보나 정당 사이에 정책경쟁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쟁점이 되는 주제에 대해 유권자들이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은 선거에 관심을 갖지 말고, 정책경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선관위가 ‘관권선거를 방조하고, 불공정 편파선거를 조장한다’는 비판, ‘위헌적’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됐습니다. 또 선관위는 트위터 등 새로운 정보통신수단을 활용한 정치적 의사표현도 규제했습니다. 투표를 독려해야 할 선관위가 투표 참여를 막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대학생들이 벌인 부재자 투표소 설치운동을 ‘불법’ 운운하며 위축시켰던 겁니다.
시대변화와 시민의식의 성장을 따르지 못하고 선관위는 선거 때마다 기계적 중립성과 선거의 공정성만을 앞세워 후보자와 유권자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제한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부?여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선관위가 정부 여당의 눈치를 보면서 중립적 선거관리를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선거 때마다 나왔던 겁니다.
물론 선거법에 대한 유권해석 권한과 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한 단속?규제권한은 선관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선관위의 이 같은 권한은 헌법정신에 어긋나거나 헌법조항을 위반해서는 안 됩니다. 국회도 선거가 끝나면 정보·통신의 급격한 발전과 시민 정치권 확대 등 사회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법을 대폭 손질해야 합니다.
공정과 상식의 시대입니다. 선관위의 선거관리는 공정하고 상식에 맞아야 합니다. 윤석열 당선인의 지역순회에 대해 ‘자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만 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에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게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았을까요. 지방순회가 다 끝났기에 실효성은 없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