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24] 주민직선 교육감 선거의 교훈

대한민국 공무원 헌장.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이것 이상이다.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후보들은 지금 생각을 접어도 늦지 않았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는 교육감 선거와 교육의원 선거를 다른 선거와 함께 실시했습니다. 교육감은 광역자치단체 초·중·고 교육 행정의 총책임자로 ‘교육대통령’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학교장을 포함해 모든 교원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교육예산을 관장하며, 조례와 규칙도 제정할 수 있습니다. 학교의 설립·폐교·이전도 교육감의 권한입니다.

예전에는 대통령이 교육감을 임명했는데 1991년 지역 주민들이 교육행정에 참여하는 교육자치제를 도입하면서 교육감이 선출직으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광역의회의 교육위원회 위원들이 교황식 선거방식으로 교육감을 뽑았습니다. 후보등록이나 추천 절차 없이 무기명 투표로 교육감을 선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비리와 잡음이 생겼습니다.

2005년에는 16개 시·도 교육감 가운데 무려 4명이 각종 비리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울산 교육감은 취임 하루 만에 구속되었습니다. 대전 교육감은 당선무효형을 받아 재선거를 실시했는데, 재선거 당선자도 당선무효형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2심에서 감형되는 바람에 ‘재재선거’를 치러야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학교운영위원회 대의원들이 교육감을 선출하기도 했고, 운영위원 전원이 투표권을 갖기도 했습니다. 어느 경우든 학교운영위원들의 간접선거는 선거인단 규모가 수천 명밖에 되지 않아 후보자들이 성향파악인 개별접촉이 쉬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려는 유혹에 빠지곤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민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시비와 잡음이 끊이지 않자 교육감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전국 16개 시·도교육위원회 의장단은 교육자치의 정상화를 위해 교육감 주민직선제를 요구했습니다. 마침내 2006년 12월 국회에서 지방교육자치법을 개정해 주민직선제가 도입되었습니다. 2007년 1월 1일 이후 실시되는 교육감선거는 모두 직선제로 치르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직선제 교육감선거는 2007년 2월 14일 부산교육감 선거였습니다. 주민직선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안타깝게도 투표율 15.3%로 주민직선제 선거사상 가장 낮았습니다. 2008년 서울교육감선거 2009년 경기교육감선거 투표율도 20%를 넘지 못했습니다. 2010년 6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부터 교육감선거를 동시에 치르면서 투표율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교육감 선거를 동시지방선거 때 다른 선거와 함께 실시하다보니 ‘줄투표’라는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교육감 선거는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는 걸 막기 위해 정당 당원은 출마할 수 없도록 했으며 투표용지에도 후보자 이름만 있었습니다. 정당은 교육감 후보자를 추천하거나 지지·반대할 수 없고 후보자도 정당을 표방할 수 없었습니다.

투표용지에 교육감 후보의 이름을 적은 순서는 추첨으로 결정됐습니다. 그러다보니 1번이나 2번을 뽑는게 무엇보다 당선에 중요한 변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비뽑기 선거, 로또 선거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헸습니다. 그래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부터 선거구마다 후보 이름의 배열 순서를 달리하는 ‘교호투표용지’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제5회 지방선거 때 나타났던 선거연합은 교육감 선거의 교훈에서 비롯되었다고 불 수 있습니다. 2008년 서율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진보후보가 공정택 보수후보에게 졌습니다. 주 후보는 17개 구에서 이겼지만 ‘강남몰표’에 지고 말았습니다. 민주진영이 분열돼 있었고, 조직동원 역량도 보수진영에 비해 취약했던 것이 패배요인으로 꼽힙니다.

2009년 경기교육감 선거에서는 김상곤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수도권에서 한나라당 성향 광역후보의 패배는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승리요인으로 중도시민단체에서 진보·노동단체·범야권까지 포괄하는 범도민후보인데다 범야권 단일후보였다는 점이 꼽힙니다. 이런 교훈을 잊지 않은 선거연합이 제5회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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