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21] 대한민국 첫번째 보통선거 5.10 총선

5.10 총선거일 투표장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5월 10일은 한국정치사에서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날 가운데 하나입니다. 보통선거가 처음으로 실시된 날입니다. 1948년 5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가 유엔 감시 하에 치러진 것입니다. 4.3사건의 제주도에서는 선거를 치르지 못했고, 남한만의 선거에 반대하는 세력은 끝내 선거에 불참했습니다.

5.10총선거 이전에도 선거가 실시된 일은 있습니다. 1919년 4월 13일 상해 임시정부에서 임시의정원 대의사(代議士, 지금의 국회의원) 33명이 선출되었습니다. 이들을 선출한 선거인은 그 날 상해임시정부에 모인 독립지사 1천여명이었습니다. 첫선거였지만 식민통치를 받고 있어 일반 민중들이 참여하지 못했기에 보통선거가 아니었습니다.

1946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이 선거도 보통선거는 아니었습니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미군정이 만든 입법기구로 5.10총선 열흘 뒤에 해산됐습니다. 입법의원은 90명인데 이 가운데 45명은 미군정이 지명했고, 45명은 민선으로 뽑았습니다. 45명의 민선의원을 뽑는 선거는 매우 복잡하게 치러졌습니다.

입법의원 선거는 리동 단위에서 시작해 면·군·도 단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실시됐습니다. 그러다보니 투표도 하루에 실시한 것이 아니라 10월 17일부터 엿새 동안 실시되었습니다. 처음 선거에 참여하는 시민들로서는 자신에게 투표권이 있는지, 또 어느 날 투표를 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5월 10일은 지방선거가 두 번째로 치러진 날이기도 합니다. 1952년 5월 10일 초대 도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4월 25일 초대 시․읍․면 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된 지 2주 만이었습니다. 당시는 한국전쟁 중이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갑작스럽게 두 차례에 걸쳐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던 겁니다.

이 선거가 첫 번째, 두 번째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실시된 부(府)·지정면(指定面) 협의회 의원 선거가 우리나라 첫 번째 지방선거라는 겁니다. 부협의회와 면협의회는 1920년 7월 지방제도 개정 때 도입되었는데, 3.1운동에 놀란 일제가 지주 등 조선의 상층세력을 회유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부협의회는 의원을 모두 선출했고, 면협의회는 일본인이 많이 살고 있는 23곳을 따로 지정면이라 부르면서 여기에서만 의원을 선출했습니다. 도에는 도평의회를 두었는데 도평의회 의원은 임명제였습니다. 자문기관이던 도평의회와 부협의회·지정면협의회는 1930년대에 도회·부회·읍회로 이름이 바뀌었고, 의결기관이 되었습니다.

부협의회와 지정면협의회 의원들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일정액 이상의 세금을 내는 25세 이상 남자였습니다. 임명제인 도평의회 회원의 피선거권은 25세 이상의 학식이나 명망 있는 남자였습니다. 부와 지정면의 선거권자는 조선인 6,346명 일본인 7,650명으로 조선인이 더 적었습니다. 이처럼 참정권이 제한된 선거였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선거가 여러 차례 실시됐음에도 5.10총선을 최초의 보통선거로 보는 겁니다. 투표율은 90%가 넘었습니다. 선거인등록제가 채택돼 선거인등록을 해야 투표를 할 수 있었는데 유권자 813만여명 가운데 784만여명이 선거인등록을 했습니다. 실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748만여명이었습니다. 선거인등록제도는 없어졌습니다.

5.10총선 정당분포

5.10총선 때 단독선거반대운동이 일어났고 참여를 거부한 정치세력도 있었습니다. 분단정부가 들어서면 통일독립국가 수립이 좌절된다는 이유였습니다. 미군정은 특별계엄령을 선포하고 선거반대자들을 탄압했습니다. 총선으로 구성된 제헌국회가 제정한 헌법에 따라 정부수립을 했습니다. 5.10 총선의 의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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