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40] “6.1지방선거, 적극 투표로 내 고장 발전을”
뜨거운 월드컵 열기 속에 실시된 2002년 제3회 동시지방선거에서 반갑지 않은 신기록이 나왔습니다. 투표율 48.9%. 역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입니다. 홍보대사인 탤런트 장나라의 인기 때문인지, “투표하고 축구 보자”는 붉은 악마의 투표참여캠페인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예상보다는 높았으니 다행이라고 자위해야 할까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5월말과 6월초 두 차례 여론조사를 한 결과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42.7%, 45.1%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998년 제2회 지방선거 때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비율이 67.8%였으나 실제 투표율은 15.1% 낮은 52.7%였습니다. 선관위가 예측한 투표율은 50%대 초반이었지만 훨씬 낮을 거라는 우려들이 많았습니다.
6.13 지방선거를 단순히 승패로만 보면 한나라당 약진, 민주당 부진, 자민련 몰락, 민주노동당 역부족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넓게 보면 ‘우리 모두의 패배’입니다. 첫 번째 패배는 주권을 포기한 유권자의 패배입니다. 투표율이 낮으면 시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절반의 시민 뜻이 시민전체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 선택으로서의 기권도 있습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 때문에, 또는 찍어줄 만한 사람이 없다든지 기권의 사유는 많고, 어느 정도 그 사유는 타당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는 기권과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참정권을 포기한 무책임한 유권자’일 뿐입니다. 아무리 정치가 미워도 주권행사를 포기하면 정치는 더욱 악화됩니다.
유권자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도 정치가 제대로 안되는데 실망했다고 돌아서면 정치가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제멋대로 움직여나갈 겁니다. 낮은 투표율에 놀라 정치를 잘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일도 없습니다. 낮은 투표율에 대한 반성은 없고 이긴 쪽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고, 진 쪽은 패배의 충격에 허탈해할 뿐입니다.
두 번째 패배는 정치인과 정당의 패배입니다. 지방은 실종되고 선거만 남았습니다. 모든 선거는 선거 당시의 정치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있고, 중앙정치와 무관한 지방정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오로지 대통령 후보들의 ‘사전선거운동’으로 일관한 무한경쟁은 지방선거를 6개월 뒤 치를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패배는 언론의 패배입니다. 투표율이 낮은 데에는 언론도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우선 지방선거 보도 양이 적었습니다. 월드컵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했습니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한 동안 시민들 기분이야 좋겠지만, 그 좋은 성적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4년 동안의 지방행정을 결정짓고 나아가 시민의 삶의 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월드컵에 보인 언론의 관심은 지나치게 뜨거웠고, 지방선거에 보인 관심은 상대적으로 차가왔습니다. 그마저도 대통령 후보들의 움직임과 발언에만 초점을 맞췄고, 정작 지방선거 후보들에 대해서는 인색했습니다.
보도 양상도 후보자의 전과, 경쟁후보와 정당간 비방, 금품 살포, 선거사범 급증 등 부정적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문제들의 비판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 극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정보 제공이나 건전한 선거여론의 형성에는 팔짱을 끼고 있었을 뿐입니다.
6.1지방선거는 그때와는 다릅니다. 시민이나 언론의 관심을 분산시킬 대형 이슈도 없습니다. 임기가 만료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은 3.9대선 때 이뤄졌고, 새 정부에 대한 심판의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중앙정치에 대한 ‘시민의 심판’이 아니라 오롯이 자치분권에 대한 ‘주민의 선택’이 투표를 통해 정확히 이뤄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