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39] 독일 녹색당 피셔 부총리…지방정치 다양성 보장 정당투표제
제3회 동시지방선거 때 정당투표가 처음 실시됐습니다. ‘1인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입니다. 광역·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과 더불어 제3회 지방선거 때부터 광역 비례대표 의원을 정당투표로 뽑았습니다. 기초 비례대표 의원은 기초의회 선거에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부터 뽑기 시작했습니다.
‘1인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건 헌법재판소가 2001년 7월 1인1표에 의한 비례대표 의석배분 방식이 위헌이라고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후보 개인에 대한 지지를 정당에 대한 지지로 간주한 비례대표 의석배분이 위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후보와 더불어 지지 정당에도 따로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법이 바뀌었습니다.
1인2표제 도입 전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가 다른 경우 시민들의 고민이 많았습니다. 자신이 투표할 지역구에 지지 정당의 후보가 없으면 그 정당에 투표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남 지역의 민주당 계열 정당 지지지나 호남 지역의 국민의힘 계열 정당 지지자들은 이런 일을 자주 겪었을 겁니다.
이런 경우 지지하지 않는 정당의 후보를 선택하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하는 일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시민의 판단과 선택이 달라지는 이런 경우가 자주 발생하면 선거 결과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됩니다. 무소속 후보를 지지한 시민의 선택도 비례대표 선출에서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사표가 되고 맙니다.
후보와 별도로 지지 정당에도 투표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지역적 지지기반이 없는 정당이나 의회에 진출하지 못했던 소수정당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의회 진출이 가능해집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녹색당입니다.
1980년 창당한 독일녹색당은 1983년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하였습니다. 27석 가운데 지역구 당선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 비례대표였습니다. 2년 뒤 1985년에는 헤센 주에서 최초로 주정부 연정에 참가했고, 녹색당 지도자 요슈카 피셔는 환경부장관이 됐습니다. 마침내 녹색당은 1998년에는 연방정부 연정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은 47석을 차지했는데 전체 의석의 7.1%에 해당합니다. 역시 이때도 지역구 의원은 한 명도 없고 모두 비례대표였습니다. 제1당은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이었는데 41%의 지지에 그쳤습니다. 슈뢰더는 녹색당을 끌어들여 연정을 구성했고 피셔는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되었습니다.
2005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사민당-녹색당 연합정부가 질 때까지 녹색당은 환경세 도입, 원자력발전 축소, 재생가능에너지법 통과 등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소수당인 녹색당의 이 같은 정치적 성과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녹색당은 2002년 연방의회 선거 때에야 비로소 지역구 의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성장한 대표적 정당입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노당은 10석으로 9석의 새천년민주당을 제치고 제3당이 되었습니다. 지역구에선 득표율 4.3%로 2석에 그쳤으나 정당투표 득표율 13.0%로 비례 8석을 차지한 겁니다. 43년 만의 진보정당 원내진출이었습니다.
민주당은 지역구 득표율 7.96%로 전남에서만 5석, 정당투표는 득표율 7.1%로 비례 4석에 그쳤습니다. 민노당은 호남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정당투표 득표율이 모두 민주당보다 높았습니다. 정당투표를 통한 정치 다양성 확보 가능성이 확인된 겁니다. 6.1지방선거에서도 정당투표를 통한 정치의 다양성이 확대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