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25] ‘액자에 갇혀’ 변별력 없이 끝난 2차 TV토론
홍보 기법 가운데 ‘액자 효과(framing effect)’라는 게 있습니다. 액자에 그림·사진·판화 등 예술작품을 담으면 시각적인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액자에 넣는 작품들이 돋보이는 겁니다. 예술작품을 액자에 넣기 시작한 건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라고 합니다. 액자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그림은 주로 벽화였습니다.
‘액자 효과’를 주장한 카네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는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의사 전달을 어떤 틀 안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달받은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똑같은 상황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전달할 때와 부정적인 표현으로 전달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에 나타나는 차이는 매우 큽니다.
불치병 환자에게 의사가 최후의 수단으로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신약 사용을 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임상실험에서 “90% 사망”이라는 설명과 “10% 생존”이라는 설명에 반응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90% 사망”이라면 망설이는 환자가 많지만 “10% 생존”이라면 10%의 확률에라도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보는 환자가 많다는 겁니다.
긍정적 설명에는 긍정적 반응이 나타나고, 부정적 설명에는 부정적 반응이 나타나는 겁니다. 선거 캠페인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지금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참여정부는 오랫동안 ‘무능정부’라는 부정적 액자에 갇혀 있었습니다. 무능정부라는 표현은 2006년 5.31 지방선거 한나라당의 선거 캠페인이었습니다.
이게 먹혀들어감으로써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이뤄지지 않았고, 열린우리당은 참패했습니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부패정당’의 액자에 갇혀 있던 한나라당은 참여정부를 ‘무능정당’이라는 액자에 가두고, ‘부패했지만 유능한 당’으로 표현되면서 ‘부패정당’의 액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야당과 보수족벌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계속 부정적 액자에 가두려 했습니다.
예컨대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 국익을 지키려는 자주적 균형외교 노력은 ‘반미친중’이라는 부정적 틀에,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의 조용한 해결 노력은 ‘친북’ ‘주사파’라는 부정적 틀에 가두려 애썼습니다. 임기 초에는 먹혀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씩 먹히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부정적 액자 효과에 시달렸습니다. 탈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은 ‘민주적 리더십’이라는 긍정적 표현이 아니라 ‘대통령답지 않게 가볍고 불안하다’는 부정적 표현으로 시민에게 전달되었다. ‘대통령다운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없이, 씌워진 ‘가볍다’는 부정적 인식의 틀(액자)은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괴롭혔습니다.
선거캠페인은 어찌 보면 프레임 싸움입니다. 성공적인 캠페인은 자신은 긍정적 액자에, 상대후보는 부정적 인식의 틀에 효과적으로 가두는 겁니다.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가 기업을 어렵게 만들고 노동자도 힘들게 만들었다며 부정적 액자에 가두려 합니다.
최저임금 주52시간제 등이 민주노총과의 정치적 거래라는 겁니다. ‘주120시간’ 발언이나 아프리카 손발노동, ‘최저임금제는 비현실적 제도’ 등으로 비판을 받았던 후보가 재계의 주장을 끌어들여 문재인 정부에 ‘친노(親勞)’ ‘좌파’라는 액자에 가두려 한 겁니다. 정작 정부는 노동계로부터 ‘반노동자적 정부’라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2차 TV토론에서 1차 때와 달리 이재명 윤석열 후보가 ‘대장동’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을 치고받은 것도 상대에게 부정적 액자를 씌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정책을 밝히고 상대 정책의 문제 지적에 한계가 있어 변별력이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TV토론은 후보 간 차이가 보다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진행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