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묵상] ‘도축’과 ‘제사’의 차이
아주 어릴 적에 우연찮게 식용견 도축장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개를 잡는 장면을 보았는데요,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던지 30년이 지나도록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사실 레위기를 보면 도축장을 방불케하는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소제를 제외한 나머지 제사는 모두 소, 양, 염소, 비둘기와 같은 동물을 잡도록 되어 있습니다. 혹시 소나 양을 잡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마 없으실 겁니다. 보통 사람이 소나 양을 잡는 경험은 평생 한 번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레위기에 따르면 제물은 제사장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 제사자가 직접 잡도록 되어 있습니다(레위기 1:5). 전문적으로 도축하는 업자가 아니라 일반인이 잡는 것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서툰 사람이 제물을 잡는 현장은 과연 어땠을까? 생각해 보셨나요?
제물의 급소를 정확하게 치거나 찔러서 즉사시킬 수 있는 능력이 제사장에게는 없습니다.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소를 최단시간에 죽이는 방법이 미간 사이를 정확하게 치거나, 심장을 찌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의 심장이 어디 있는 줄 알고 그것을 단 번에 찌를 수 있을까요? 골프 선수나 야구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살아있는 소의 미간을 어떻게 정확하게 때릴 수 있겠습니까?
주로 눈을 터뜨리거나 심장 주변부를 수차례 찌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는 소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소가 죽을 때 즈음에는 소의 안면부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고, 심장 부위는 흉측하게 난도질 되어 있고, 제물을 잡은 사람은 머리부터 발 끝까지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죽은 또 어떻게 벗기고, 각은 어떻게 뜰까요? 정육점 냉장고에 걸려 있는 깔끔한 고기를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도축이라고 하지 않고 제사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안수’에 있습니다. 내가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할 때, 나의 죄가 제물에게로 전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동물이 아니라 내 죄의 목을 따는 것이고, 죄의 머리를 내려 치고, 죄의 폐부를 찔러 죄를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결코 고상하거나 우아한 종교적 의식이 아닙니다. 죄와의 싸움입니다. 피가 낭자한 혈투가 제사 때마다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레위기가 말해주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리며 내 죄와 이렇게까지 혈투를 벌인 적이 있으십니까?
석문섭 목사의 오디오 ‘잠깐 목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