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번창했던 천년 고도는 금이 갔어도 찬란함은 그대로
[아시아엔=최명숙 시인] 밤 11시 넘어 씨엡립 공항에 내려
앙코르와트 천 년을 디딘다.
문득 어느 왕조의 화관으로 피어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몇 생을 거듭해 온 역사는 나를 알아볼까?
날이 밝았다.
거대한 나무뿌리에 눌려 무너지는 티프롬사원에
번창한 천 년은 금이 갔어도
보이지 않는 다른 천 년이 건장하게 존재해
영화 속으로도 걸어 들어갔음도 보았다.
뜨거운 하늘 아래
눈이 맑고, 소나기 한 차례의 쉼이 있는
사람들의 나라에서 늙은 방랑의 영혼,
주름진 전생이 사원에 살던 과거가 있을 법하다.
동행한 늙은 피디는 낯이 익다고 한다.
진즉에 알아보았음에도
모른 척한 나의 내심을 읽은 듯.
밤 깊어가는 펍스트리트 레드피아노에서
부딪는 잔엔 허물 벗는 꽃들이 피었다.
최명숙 시집 <따뜻한 손을 잡았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