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탈레반 신정부와 ‘실리 외교’ 추구를
[아시아엔=인터뷰 이상기, 민다혜 기자·사진 진기훈 대사 제공]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8월 말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는 등 아프간 사태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그동안 국제사회의 ‘이단아’로 꼽혀온 탈레반이 향후 아프간 대내외에서 어떤 입장과 정책을 펼칠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아시아엔>은 2015년부터 2년여 아프간 대사를 지낸 진기훈 경북도 자문대사 인터뷰를 통해 △한-아프간의 어제와 오늘 △탈레반 신정부와 한국 등 국제사회의 대응 △바람직한 대아프간 정책 등에 대해 해법을 들었다.
먼저 한국과 아프가니스탄 관계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향후 한국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달라.
우리나라는 지난 20여년간 아프간 평화와 재건을 위해 실로 엄청난 지원을 했다. 이 시기 우리의 대외원조 최대 수원국이 아프간이다. 크게 나눠보면 △아프간 군인·경찰의 능력 배양 △사회 경제적 재건 △난민·여성·어린이 구호같은 인도적 활동이 있다. 우리가 수행한 지방재건팀(PRT)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기록될 정도로 효과가 뛰어났다. 다산부대와 동의부대가 학교 건축, 도로 정비, 차리카(바그람) 한국병원 건설, 바그람(카불) 직업훈련원 운영 등의 보람 있는 일을 많이 했다. 우리는 아프간에서 정치적 전략보다 순수한 인도적 동기에서 사심 없이 지원했다. 탈레반 정부도 이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거다.
탈레반 정권에 대한 대한민국 외교전망은 어때야 할는지?
먼저 탈레반 정부를 승인하고 적극 교류 의사를 표명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아프간 신정부가 샤리아율법에 따라 여성 억압정책을 지속한다면 국제적으로 승인받기는 쉽지 않다. 반면에 여성, 소수종파, 소수인종 등 약자들에게 전향적 태도를 취한다면 정부승인과 더불어 외교관계 정상화가 쉬울 거다. 신정정치를 계속할지 세속국가로 면모를 일신할지에 대해 우리 정부는 사전 예단 대신 열린 자세로 신정부 동향을 주목해 봐야 할 것 같다.
이번 ‘아프간 사태’ 이전 국내에 와있는 아프간인은 어떤 사람들로, 무슨 역할을 하였는지?
지난 20년간 아프간 공무원이 코이카 연수생 초청 사업으로 대거 방한해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산림녹화, 보건의료, 전자정부, 거버넌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경험을 전수받아 귀국해 아프간 동료들에게 전파했다. 또 한국 정부의 국비장학생으로 유학 온 학생들은 컴퓨터, 경제무역, 농업 같은 실용학문을 공부했다. 한국방문 경험이 있는 아프간인들이 우리 발전상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아프간 현지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해 달라.
다산부대, 동의부대나 지방재건팀 소속으로 아프간에서 활동한 분들을 제외하면 아프간 내 한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민간기업은 바미얀주에서 아프간 최초 고속도로 건설이나, 북동쪽 바닥샨주 산악지역에서 타지키스탄으로 통하는 도로공사 감리 등을 했다. 치안 불안으로 걱정이 많았지만 안전하게 공사를 마쳤다. 국내에 아프간 난민이 들어올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국제법상 난민은 박해 받은 국가를 벗어난 최초의 국가에서 보호할 의무가 발생하는데 아프간 난민이 제3국을 거치지 않고 우리나라에 도착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자격이든 일단 우리나라에 입국한 후에 난민으로서 망명을 요청할 경우에는 면밀히 조사 후 결정한다. 단순히 경제적 동기에서인지 탄압과 위해가 있어서 보호를 요청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아프간 유랑민 가운데 난민 요건에 해당하는 인사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그 기준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8월 28일 아프간인 380여명이 한국에 무사히 들어왔다.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우리 대사관이나 한국병원, 직업훈련원에 근무한 아프간인을 특별 공로자로 수용한 것은 존경받을 만한 용단이다. 이들은 탈레반 점령 이전에도 협박전화를 받고 이사를 자주 해야 할 정도였다. 이번 결단으로 소중한 생명을 살렸고 인권국가로서의 국제 위상이 한층 제고되었다.
이번 아프간 사태를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이라면.
국제사회의 공여국들은 그 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가니 정부가 속절없이 무너진데 대해 실망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국제사회도 아프간 재건에 실패한 것에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처럼 부패하고 외국 원조에만 의존해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우쳐 주었다.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우리의 새마을운동 정신은 아프간에 꼭 필요한 덕목이었다. ‘고기를 주는 대신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했지 않았나 싶다. 수많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대부분 from hand to mouth로 소진되었고 사회 경제적 재건을 위한 자본으로 쓰이지 못했다. 장기적인 비전이나 전략 없이 임시처방의 원조로는 실패한 국가를 재건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패의 늪을 형성하는데도 일조하지 않았나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이 한국 등으로부터 합법적인 정부로인정받기 원하고 특히 한국과의 경제교류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아프간에는 리튬 등 손대지 않은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고 하는데.
지하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같은 보석, 라피스 같은 반보석이 흔하게 거래되고 있고, 하얀 대리석으로 된 거대한 돌산도 볼 수 있다. 라듐 같은 희토류와 우랴늄 같은 전략물질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물론 상세한 매장량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탈레반이 모든 주요도로를 장악하고 있어 채굴을 못하였다. 탈레반 대변인이 한국과 경제협력을 하길 희망한다는 기사를 보고 나 역시 고무되었다. 어느새 탈레반조차도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가 치안불안을 해소하고 자원개발과 인프라 구축, 공업화와 정보화를 위해 우리와 협력한다면 정말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탈레반이 시위대 발포나 여성 잔학행위 등의 보도가 있었다. 여성도 교육, 보건, 취업 등 이슬람 체계 내에서 모든 권리를 갖게 될 것이라고 탈레반은 말하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들 하는데.
탈레반 복귀 직전 및 직후에 일어난 일시적인 혼란상황인지 지속적인 정책인지는 좀더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년간 광야에 있었던 탈레반이 크게 변했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과거 탈레반 집권시보다 개선되고 진보하였기를 희망해 본다. 그간 국제사회의 대아프간 활동을 통해 탈레반도 의식에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일반 주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진 것은 명백하니까. 여자 어린이를 학교에 보내고, 조혼을 폐지하도록 하고, 여성 사회활동을 허락하도록 하여 많은 성과를 내었는데 탈레반이 이 모두를 다시 되돌린다 해도 인권에 대한 인식마저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국제사회도 너무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탈레반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아프간 공용어인 파슈트어는 한국에서 특수 외국어로 지정되었는데, 향후 아프간 공용어를 교육할 필요가 있는가?
아프간에서는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의 언어인 파슈트어와 함께 페르시아어 계통의 다리어가 공용으로 쓰인다. 파슈트어 교육여건이 어려우면 다리어를 교육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역사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이란과 함께 페르시아제국에 속해 다리어와 이란어는 매우 유사하다. 이렇다보니 아프간 사람들 중에는 이란 TV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주몽과 대장금을 시청하고 기억하는 이가 많다. 또 아프간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고, 언젠가 한국에 가서 꿈을 펼치려는 청소년이 매우 많다. 아프간 대사 시절 카불이나 헤랏트 같은 주요 도시에 세종학당을 설립하려 했지만 치안 불안으로 실현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아프간은 근현대사에 와서 전쟁과 내전으로 점철되었지만 옛 무굴제국의 영화를 보여주는 장엄한 왕궁, 미나트 같은 유적들이 도처에 남아 있다. 영욕의 아프간 역사와 문화를 잘 이해하고 미래의 한-아프간 관계를 선도할 파슈트어, 다리어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의 대아프간 외교방향이나 핵심사안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전임 공관장으로서 말씀해 달라.
아프간 탈레반 정부를 무조건 배척하고 고립시키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슬람 국가라는데 대해 편견이나 공포를 갖고 볼 필요도 없다. 물론 국제사회 일원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기준은 있어야 하겠다. 새로운 아프간 정부가 외국인 안전을 보장하면서 산업화 및 정보화의 길을 걷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개발경험을 바탕으로 협력하면 좋을 것이다. 아프간은 산업 인프라 구축과 공업화, 디지털화가 동시에 필요한데 우리가 최적의 파트너임을 주지시키고 상호협력하자고 접근해야 한다. 아프간의 도로, 철도, 공항 같은 인프라 구축에서부터 공업화, 디지털 경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롤모델이 되고 있다. 이 점을 잘 피력해서 아프간 신정부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탈레반 정부가 한국과 손잡고 개방과 실질을 추구하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아프간이 경제적으로 변화와 개방의 길로 나가면서 우리와 협력한다면 최단기간에 경제부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인권 개선이나 민주화와 같은 정치사회적 변화도 수반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물론 당분간 혼란상황에서는 아프간 유랑민과 난민을 돕는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