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협력 아프간인 380명 오늘 인천 도착, 진천 체류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정권을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프간의 한 부모가 아이만이라도 살려야 한다며 철조망 너머로 미군에 아기를 넘기고 있다. 아프간에서는 공포 정치를 피해 자녀를 탈출시키는 부모의 절박한 선택으로 생이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간에서 철수한 주민 4백명을 한국이 받기로 하였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에 협력한 사람들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는가? 선진국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쾌거다.

급파된 공군 수송기로 미군의 협조를 얻어 이루어졌는데 한미연합작전의 성과다. 아프간인을 주한미군 기지에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프간인들이 오는 곳은 한국 땅이며 한국이 돌보는 것이지, 아프간에서 작전하던 미군들은 상관이 없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23일(현지 시각) 국외로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미국 공군의 C-17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미 해병대 제공

21세기 중동에서 미군들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었는가? 후세인을 응징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 ‘사막의 폭풍작전’에서 눈부신 성공을 가두었다. 롬멜과 패튼을 넘는 눈부신 전격전의 승리였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패퇴했다. 2001년부터 2021년까지 최장의 전쟁을 겪었다.

아프간 사람은 특별히 외세에 대한 저항정신이 강하며 더구나 이슬람은 서구에 대한 적의가 강하다. 세계 최고의 미군이 실패한 이유는 영국, 소련이 실패한 것과 똑 같다.

아프간 전쟁이 끝났다.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지 10일이 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 등의 안전한 철수를 지원하기 위해 8월 31일을 넘기는 철수를 탈레반에 애원하고 있으나 탈레반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베트남 평화협정을 키신저가 믿은 것을 반성하듯이 미국은 아프간 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대적 반성을 해야 한다. 특히 오바마 전 대통령과 그 시대 안보보좌관들 책임이 크다. 이것만이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소득이다.

19세기 초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은 큰 고초를 겪었다.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과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이 겪었던 것과 같았다. 영국은 러시아의 부동항 진출을 막기 위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충돌했다. 철수하는 영국군이 카불 고개에서 공격당해 전멸했다. 당시 영국은 세계 러시아와 함께 최강국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 화기는 별 차이가 없었다. 삽탄 장전식으로 8발이 사격되는 M-1소총은 2차 대전 중에 최초로 사용되었다. 일본군은 그 화력에 놀라 미군이 전부 기관총으로 장비한 것으로 알았다.

그때까지 소총은 모두 단발총이었다. 기관총은 기동하는 보병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요새에 배치된 방자에게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였다. 때문에 19세기 보병은 피아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전력의 차이는 지형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달렸다. 익숙한 산악 지형에서 습격하는 아프간 부족에 이동하는 영국군이 고스란히 당했다. 6.25전쟁에서 북진 중 미국 2사단의 문혜리의 ‘인디안 태형’과 장진호에서 미 해병대가 고스란히 당한 역경과 똑 같다.

지형의 유리함은 20세기에도 유리했다.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어 브레즈네프의 실각을 가져왔는데 소련판 베트남전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형을 이동하기 위해 소련군은 헬기를 사용했다. 아프간 인들은 미국이 파키스탄을 거쳐 지급하는 스팅거 미사일을 사용하여 격추시켜서 소련군은 고립되어 갔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은 헬기로 구출되었으나 아프간 전투에서 소련군은 구출되지 못했다. 미군만큼의 기동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