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으로 되돌아보는 한국의 아동학대 실태

정인이 사건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필자가 아동학대(兒童虐待)를 심도 있게 접하게 된 것은 1988년 2월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아동학대에 관한 아시아지역 회의’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기획관리관으로 근무한 필자는 아시아지역 15개국 참가자 50여명과 함께 아동학대의 진단과 치료 등 다양한 주제로 일주일 동안 회의를 진행했다.

귀국 후 아동학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인사들을 규합하여 1989년 3월에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Korean Association for the Prevention of Child Abuse and Neglect)를 창립하여 필자가 초대 부회장, 2대 회장 그리고 현재는 상임고문으로 봉사하고 있다.

현재 협회(회장 이배근 박사)는 서울에 사무국을, 전국 시도에 지부를 두고 연 2회 세미나 개최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 아동복지법(兒童福祉法)은 아동학대를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한 18세 미만의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서적, 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아동학대 유형을 크게 △신체적 학대(abuse)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방임(neglect) 등 4가지가 나눌 수 있다.

아동학대는 선진국이나 개도국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해악이면서도 아직 인식이 빈약한 분야다. 옛적에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가 자녀들을 훈육이라는 미명 아래 체벌을 행하였으며,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아동구타는 아동의 뇌손상과 지능장애, 심리적 장애, 불구(不具),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판단된 피해 사례는 2017년 2만2367건, 2018년 2만4604건, 2019년 3만45건이며, 아동학대 사망자 수는 2017년 38명, 2018년 28명, 2019년 42명으로 집계됐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고 성장한 아동의 85%는 성인이 되어 배우자 폭력과 자녀학대 가해가가 되는 ‘폭력의 악순환’을 일으킨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재판장 신혁재)는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첫 재판을 1월 13일 오전에 열었다. 검찰은 법의학 전문가와 단체 등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발로 밟는 등 복부에 강한 외력이 가해져, 췌장 파열 등 복부가 손상됐고 이로 인해 과다 출혈이 발생하여 사망하였으므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인정된다며 살인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양모(養母) 측은 “고의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양부모의 다음 재판은 2월 17일에 열린다.

이날 법원은 공판이 진행되는 본 법정 외에 추가로 2개 법정에서 공판을 중계했다. 전국 각지에서 총 813명이 재판 방청을 신청했으나 추첨을 통해 선발된 51명이 3개 법정에서 재판을 지켜봤다. 검찰이 양부모의 구체적 학대 사실을 언급할 때마다 방청객들은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흘렸다.

법원 울타리 주변에는 70여개의 조화(弔花)와 학대로 숨진 다른 아동들의 영정 사진 12개가 놓였다.

아동학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모(예비 부모)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성장한 오늘의 젊은 부모들 중에는 가정윤리, 가정질서를 무시한 돌출행동으로 아동을 학대하고 있다. 또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아기를 낳은 부모들이 자녀를 학대하는 비율이 높은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장기적인 아동학대 방지책으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올바른 부모역할, 가정폭력 예방 등에 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아동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국가발전을 위한 인력자원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도와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감소하는 시점에 왔기에 이 땅에 태어난 어린 생명을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우선 책무이다. 이에 아동학대 예방과 근절을 위하여 국민의 적극적 참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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