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의 비애②] “내가 원해서 걸린 것도 아닌데…”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통계청이 12월 11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0’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코로나 낙인(烙印)’에 대한 두려움이 코로나19에 걸릴지 모른다는 공포를 넘어설 정도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건강커뮤니케이션)가 올해 총 7차례에 걸쳐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국민인식조사’를 시행한 결과, 올 상반기엔 대체로 코로나 낙인 두려움이 코로나 확진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설 정도로 공포감이 컸다.
유명순 교수팀이 실시한 설문조사 문항 가운데 ‘확진될까 두렵다’와 ‘확진이란 이유로 비난받고 피해 입을 것이 두렵다’에 대해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지난 3월의 경우 각각 58.3%와 68.3%로 낙인 공포가 확진 공포보다 10%포인트 높았다.
이와 같은 코로나 낙인 공포는 4월과 5월 조사에서도 60.2%와 57.1%로 60% 안팎을 유지했다. 8월 이후 코로나가 재확산하고, 10월 들어 다시 확산세가 이어지며 ‘낙인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도 더 늘었다. 지난 10월 말 조사에선 10명 중 7명 정도(67.8%)가 낙인 공포를 걱정할 정도였다.
유 교수팀의 설문에서 ‘방역대책이 강화돼야 할 때라면 인권보호는 후순위로 미뤄둬야 한다’에 찬성하는 응답은 10명 중 8명(78.2%)에 달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방역’과 ‘인권’이 충돌할 때 대부분 ‘방역’을 지지했다는 점은 미국이나 유럽 일각에선 사교모임 자제나, 휴대전화 위치 정보 활용 등을 인권침해로 보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잖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갤럽 인터내셔널(Gallup International)이 지난 3월 28개국 성인 2만5천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자의 80% 가량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개인의 권리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미국(45%), 독일(71%), 영국(72%) 등에 비해 높았고, 28국 평균(75%)에 비해도 높은 수치였다.
최근 전라북도 순창군청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간호직 5급 과장을 직위해제하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Korean Pediatric Association)는 “코로나19 감염 이유로 직위해제 한 것은 마녀 사냥한 것이며 이는 심각한 인권침해”라며 순창군수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의사회는 “순창보건의료원 A과장이 처벌받아야 한다면 코로나19 초기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은 정부도 처벌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낙인’에 대한 과도한 공포는 감염 경로를 밝히기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는 자발적 진단 참여를 회피하게 만들 수 있어 자칫 코로나 확산이 가속될 수 있다. 이에 방역 당국과 전문가들은 대중에게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치료를 잘 받으면 전파력이 점차 줄어들고, 완치 이후엔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려야 한다.
우리나라 코로나19 첫 확진자는 1월 19일 중국 우한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중국인 35세 여성으로 20일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국 국적인 첫 확진자는 1월 24일 우한을 다녀온 55세 남성이다. 코로나19 첫 사망자는 2월 19일 경북 청도군 대남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한 63세 남성 환자에 대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진행한 결과 검체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사망진단서(시체검안서)에 역사상 올해 처음 등장한 단어가 ‘코로나19’이다.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 2-3월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봐 의료진도 장례업자도 시신에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평소 15만원이던 운구차 비용도 ‘위험수당’을 포함해 5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여느 죽음과는 다르게 3일장을 한 뒤에 화장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감염 우려 때문에 24시간 안에 화장을 마쳐야 한다. 화장장에는 고인의 영정도 위패도 없이, 관이 지나간 자리마다 소독약을 뿌린다.
코로나19 환자가 병원이나 자택에서 사망하면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 들어가서 시신을 그대로 이중 비닐 팩으로 싸서 밀봉을 한다. 그리고 시신 가방(body bag)에 담고 관에 넣어야 하므로 일반 주검과 같이 염습을 할 수가 없다. 염(殮)은 ‘묶는다’, 습(襲)은 ‘목욕시키고 갈아입힌다’는 뜻이다. 또한 유족은 밀접 접촉자이거나 확진자인 경우가 많아 모두 격리되는 바람에 임종을 못 지키고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는 경우가 많다.
지난 12월 20일 오전에 필자가 다니는 교회의 교인(60대 여성) 한 분이 코로나19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소천했다. 곧 시신을 화장한 후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설치했으나 유가족들이 코로나19 확진 또는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장례식장이 폐쇄되고 교회 주관 발인예배도 취소했다.
이에 교인들은 각자 집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장례식장을 다녀온 목사, 전도사, 교인들은 코로나 선별검사를 받았으며, 다행히 모두 음성으로 판정되었다.
사람은 엄마 자궁 속에서 약 280일 동안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후에 좁은 산도(産道)를 통해 필사적으로 이 세상에 나와서 세상살이를 하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다. 이에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면서,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망자의 얼굴은 코로나19든 뭐든 사인(死因)과 관계없이 모두 평온하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별세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