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선원 법현스님의 ‘추억 속 먹거리’

떡메로 내리치면 인절미는 더 찰져지면서… <출처 알짜배기로사 블로그>

[아시아엔=법현 스님, 열린선원 원장] 내 고향은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이었다. 10리를 넘게, 산모퉁이 지나, 들길 따라, 시냇물 따라 걸어서 초등학교(국민학교)에 다녔다. 어머니가 친정에 가신다고 하면 나도 덩달아 외갓집에 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었다. 새로운 경치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도 물론 있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운 먹거리를 먹는 즐거움이 더 컸다.

여름에 따라 나서 산모퉁이를 돌 때면 원두막을 지나치지 않으셨다. 원두막에는 둥그런 수박이 손짓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할머니 할아버지 드릴 수박을 큰놈으로 잘 골라서 사시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큰 수박을 고르고 나서는 “우리 아들도 한 덩이 먹어야지?” 하시면서 작은 수박을 골라 주셨다.

출처 영남일보

냉장이 되지 않은 수박이었지만 먹을 것이 별로 없었던 그 시절에는 그래도 정말 맛있었다.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수박 단맛이란! 그 한 덩이의 수박을 어머니께는 한 쪽도  드리지 않고 혼자서 다 먹었다. 그야말로 배가 터지게 먹었다.

어찌 보면 설탕 맛이 있지만 물배를 채운 것이기도 했다. 포만감으로 행복해져서 어머니를 앞서 가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아! 뱃속이 수박으로 가득 차니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뱃속에서 묘한 소리가 나는 것이다. 바로 창자를 채운 수박 국물이 출렁출렁 소리를 내서···. 이솝 우화의 늑대 생각이 나는 것은 무슨 일이었을까?

이제는 이리 추운 겨울에도 수박이 나온다. 시원하지 않으면 먹지도 않는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느냐 한다.
그럼 수박의 줄 깎는다고 호박 될까? 성품이야기 오래 해도 그게 그거다. 좋으면 씨부터 좋은 것으로 말해주자. 나쁘면 이제 씨앗이어서 그러니 작디 작은 씨에서 크디 큰 수박들이 넝쿨째 굴러오는 도리를 알자 해보자.

겨울에 갈 때는 인절미를 얻어먹었다. 인절미를 만드는 것은 또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한 체험이었던가? 떡메를 치는 사이사이 물을 묻혀서 손으로 잘 뒤집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떡메에 떡이 묻지 않으면서도 먹기 좋게 찰기를 유지하면서 말랑말랑해진다.

떡메를 치는 사람의 기운이 좋아야 한다. 들어 치는 시간과 떼 내는 시간이 잘 들어맞고, 오가는 손의 빠르기도 잘 맞아야 한다. 잘못하면 인절미에 들러붙어서 떡메가 떨어지지 않거나 손등 위를 찍을 수 있다. 떡메가 인절미를 치고 떨어질 때 나는 소리도 또 어찌 그리 경쾌하던지! “쩌~엉~”소리가 울려 퍼진다.

외할머니 댁에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이웃집에 마실을 따라가서 얻어먹기도 했다. 겨울 밤 따뜻한 아랫목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나누는 이야기들은 참으로 찰졌다. 밤이 이슥하면 굳어진 인절미를 내와서 화로에 얹어 구워 먹기도 하고, 조청에 찍어 먹기도 하는 인절미는 정말 천상의 별미 같았다.

조청이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외할머니 이것이 무엇이지요?” 하고 여쭸더니 외할머니께서는 “워매, 우리 외손주가 조청이 맛있는가 보네…. 여그 조청 한 접시 더 줏씨오,예?” 하여 조청 한 접시를 더 얻어먹었다.

그러고도 한 접시를 더 먹었는데, 어찌 했을까? 그저 맛있고 아까워서 접시에 묻어 있는 조청을 혓바닥으로 싹싹 씻어 먹었을 뿐인데 그 모습을 보고 한 접시를 더 주더라고.

아! 상좌인 대자스님이 강원 학인으로 통학 강원인 부여 화암사 비구니 강원에 다니고 있는데 김장울력 뒤 조청울력을 하루 더하여 강주스님께 조청 만드는 비법을 이어받아 생강 조청을 만들어서 먹어보니 아주 맛이 좋았다.

보국사에서 맛볼 수 있다. 조청 만들기는 기간과 주의력이 많이 드는 고난도 울력이란다. 화암사는 무량사 뒤쪽에 있으며 환경운동으로 이름난 수경스님의 부친인 정원스님이 주석하셨던 절이다.

1990년대 초부터 인연이 있었는데 2000년대 초에 열반하셨다. 열반하시기 직전 찾아뵙고 허리 받침하고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었다. 매우 맑은 스님이셨다. 화암사 비구니 강원은 성인스님이 강주이고 매주 월화요일에 강의하고 특강은 별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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