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바로 알기⑪] 한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가 베트남산?

고급 아라비카 품종를 생산하는 커피 밭이 늘어나고 있는 베트남 달랏 고지대 커피농장. 커피 밭을 감상하려는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편의시설도 속속 마련되고 있다. 커피 생산과 관광을 접목하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베트남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사진 박영순 커피 칼럼니스트>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지금은 중국을 읽을 시간> 등 저자 외] ‘커피’ 하면 우리는 흔히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여러 커피원 산지를 떠올린다. 그래서 베트남이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 커피수출국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커피생두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라는 사실을 들으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베트남 커피재배는 150여년전 서부고원지대에 가톨릭교와 함께 전파된 아라비카종 묘목으로 시작되었다. 베트남에 제일 먼저 도래한 프랑스인은 여느 제국주의 국가의 세력팽창 사례와 마찬가지로 선교사였다.

베트남산 G7호아탄덴 커피

선교사는 뒤이어 진출하는 본국의 군대와 토착왕조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정권은 왕조를 세우는 과정에서 선교사를 통해 프랑스군대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왕조가 성립한 이후에는 서방의 통상요구를 거절한 채 선교활동만을 허락했으나, 2대 민망황제에 이르러서는 선교사마저 추방했다.

하지만 오히려 선교사들은 농촌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교세 를 확장하여 신도를 늘리고, 농부와 지주까지 포함한 기독교 마을을 만들었다. 이 공동체는 기독교식 관습, 학교, 계 급구조를 구축했는데, 1857년에는 커피묘목도 들여왔다.

이 공동체는 유교를 배척했으며 새 왕조의 강압적인 관료제와 징세에 반대하는 반란의 거점이 되었다. 기독교를 앞세운 서구문화가 베트남의 전통문화와 왕조체제를 위협하자 황제는 기독교를 탄압했다. 이는 프랑스군대가 베트남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 결국 다낭을 시작으로 베트남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이 기간에 베트남에서는 커피재배와 음용법이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다시 프랑스와 미국과 전쟁을 치렀고,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커피농사를 비롯하여 베트남의 농업은 피폐해졌다. 그러나 1986년 도이머이정책이 단행되면서 커피도 농촌의 소득작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경제난을 벗어나 빨리 소득을 올리고 싶었던 정부와 농부들은 재배조건이 덜 까다로운 로부스타종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재배했다.

때마침 브라질의 커피작황이 나빴던 1994년과 1997년에는 세계커피 가격이 급등했다. 그리고 커피 가공기술과 블렌딩 기법의 발달은 로부스타종 커피 수요의 증가로 이어져 베트남 커피산업이 급성장했다. 정부의 의지와 세계경제 상황, 커피 소비문화의 다양화에 따른 수요창출이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환상적인 조합 덕분에 베트남은 1990년대말부터 콜롬비아를 제치고 세계 2위 커피수출국에 올랐다.

현재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커피품종은 로부스타종이 전체 의 약 95퍼센트에 이르고, 나머지 5퍼센트는 아라비카종이다. 베트남은 세계 로부스타커피 생산량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 하지만 공급과잉에 따른 원두가격 추락과 값싼 로 부스타종에 특화된 베트남의 농업구조는 장기적으로 악순 환이 되어 현재 낮은 이윤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베트남의 주요 커피재배지는 서부고원지대에 서로 이웃한 닥락, 럼동, 닥농 등 3개성이다. 이곳의 커피재배 면적은 베트남 전체 커피재배 면적의 약 74퍼센트에 이른다. 이 가운데 특히 닥락은 세계에서 가장 큰 로부스타 원두재배지다.

우리나라의 주요농산물 수입품은 2017년 기준으로 밀, 대두, 옥수수, 커피순이다. 커피는 식량이 아닌 음료의 원료로서 4대 주요농산물 수입품에 당당히 포함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커피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베트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비자 대부분은 케냐,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같은 커피원산지만 익숙할 뿐 베트남산 커피가 그렇게 많이 수입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커피대중화의 뿌리는 믹스커피와 커피자판기일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원두커피가 대세가 되면서 그 인기도 시들해진 느낌이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믹스커피를 찾는다. 그런데 상점에 진열한 인스턴트커피와 믹스커피의 원재료를 잘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각 생산지별 원재료 비율을 모두 합쳐도 100퍼센트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어 D사 인스턴트커피의 원재료 배합비는 “온두라스산 35퍼센트, 콜롬비아산 20퍼센트”라고만 적혀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45퍼센트에 해당하는 커피원재료는 어디서 온 것일까? 바로 베트남이다. 일명 ‘봉지커피’로 부르는 일회용 스틱믹스커피의 원재료 배합비율도 이와 비슷하다.

굳이 베트남산임을 밝히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눈속임은 커피에 대한 우리나라 소비자의 막연한 이국적 감성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기업의 상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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