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기] 혼밥·혼술·혼고기·혼영 ‘원조’

일본 라멘 전문점 ‘이치란’. 혼밥의 원조격이다.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지금은 베트남을 읽을 시간> 등 저자 외] 우리나라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에서 ‘혼자 볼게요’ 바구니를 도입했다고 한다. 직원의 안내를 원하지 않는 고객에 게는 말을 걸지 않겠다는 거다.

일본에서도 ‘무언 서비스’라고 해서 말을 걸지 않는 침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의류업체 ‘어반 리서치’에서는 ‘말 걸 필요 없음’ 장바구니를 비치해 두고 점원의 설명 없이 고객이 느긋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교토에 본사를 둔 운수회사인 ‘미야코 택시’도 ‘사일런스 차량’이라고 해서 무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침묵은 기본, 목소리는 선택인 셈이다. 이런 침묵, 무언 서비스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려는 일본인의 특성과 잘 맞아서 자기영역 침범을 부담스러워하는 고객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일본은 무언 서비스가 이슈화되기 전부터 남 눈치 안보고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나름대로 잘 조성되어 있는 나라다. 예전부터 혼밥, 혼술, 혼고기뿐만 아니라 혼자 영화보는 혼영, 혼자 여행하는 혼행 등 나홀로 활동하는 나홀로족을 위한 배려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1997년 후쿠오카에 본점을 둔 라멘 전문점 ‘이치란’은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되어 있는 1인용 좌석으로 유명해졌고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1인용 좌석은 나홀로 식당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최근에는 대학 식당가에도 개별 칸막이 좌석이 만들어지고 있다.

혼자 가고 싶지만 역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들, 일본 나홀로족의 고충도 적지 않다고 한다.

어쨌든 각종 무언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나홀로’를 즐기는 일본인의 이런 성향은 기상천외하고 다양한 아이템을 판매 하는 자판기문화 발전에도 일조했다. 자판기문화의 발전은 편리성과 인건비 절약 등의 다른 이유도 물론 있다.

최근 에너지절약 정책 및 흡연자 감소로 자판기 대수가 줄고 있는데, 그래도 2017년 말 기준 전국에 약 430만대가 설치되어 있다. 양도 양이지만 다양성으로 해외에서도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도입된 식권 등의 티켓 구입을 포함해서 각종 음료, 낫토, 어묵, 팝콘, 라멘, 다코야키, 야키소바, 스시, 쌀, 아이 스크림, 바나나 같은 음식 종류뿐만 아니라 속옷, 오미쿠지(길흉을 점치는 제비), 명함, 꽃, 책, 신문, 화장품, 우산에 이르기까지 판매하는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자판기만으로 편의점이 차려지기도 한다.

이런 일본이 이제는 자판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로봇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규슈 나가사키현(九州 長崎県)의 하우스텐 보스에는 세계 최초의 로봇 호텔인 ‘헨나 호테루’(変なホテル, 이상한 호텔)가 있다. 호텔 프론트에 로봇 스태프가 근무하며 직원이 해야 하는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미래에는 로봇 바리스타, 로봇 셰프 등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과 기계만으로 운영되는 매장들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4차 산업혁명시대와 코로나19의 영향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로 봐도 될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무언 서비스, 혼밥용 칸막이 식당, 다양한 자동판매기, 로봇 종업원 등 비대면 형식의 서비스가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리저리 치이며 마음 상할 일 많은 현대인들에게 때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하는 취향 존중 서비스라는 생각과, 인간관계는 더욱 소원해지고 삭막해진다는 우려가 동시에 들 수밖에 없다. 인간미 상실 없는 발전 모델은 없는 걸까? <출처=지금은 일본을 읽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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