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바로 알기⑬] “베트남 계란커피 한잔 하실래요?”

서울 연희동 콩카페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지금은 베트남을 읽을 시간> <지금은 일본을 읽을 시간> 등 저자 외] “알로(Alo)!”베트남의 커피숍이나 호텔 로비에서 전화를 받는 직원들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는 한마디다. 프랑스어인 알로(Allo)와 발음이 같다. ‘여보세요’라는 뜻이다.

베트남에는 이처럼 프랑스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는데, 커피 문화도 상당히 프랑스 스타일을 닮았다. 일단 커피를 뜻하는 베트남어 ‘까페(cà phê)’는 더 물을 것도 없이 프랑스어 카페(café)에서 유래했다. 작은 의자를 도로변 쪽으로 놓고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즐기는 노천 카페도 서구적이다.

더운 열기와 따가운 햇살 때문에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들게 마련인데 오히려 거리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인용 추출기로 커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익숙한 커피문화인데, 베트남은 1인용 카페핀(커피 추출기)을 사용한다.

카페핀은 커피 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시간과 핀을 올려놓은 커피잔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오롯이 혼자 갖는 느낌이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이 기구는 가볍고 작아 어디나 들고 다닐 수 있다. 이 기구에 로부스타 커피를 내려 뜨겁게도 차갑게도 마시는데, 맛은 정말 쓰다. 이 커피를 블랙커피라고 하는데,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베트남 사람은 로부스타 커피의 강한 맛에 익숙한 것 같다. 블랙커피를 순화한 것이 연유커피(cà phê sữa)다. 이 연유커피도 프랑스의 카페오레(café au lait, 영어로는 milk coffee)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시절, 베트남에 거주하던 프랑스인 중에서도 권력자들은 신선한 우유를 구해서 맛좋은 카페오레를 즐겼지만, 평민이나 군인은 신선한 우유를 구하기 어려웠다. 무덥고 습한 기후에 냉장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우유와 설탕을 넣고 끓이면서 수분을 날리고 당도를 높여 상하지 않는 연유를 만들었다. 로부스타 커피의 쓴맛과 연유의 단맛을 합친 연유커피의 맛은 베트남의 태양만큼이나 강렬하다. 연유커피에 코코넛 밀크를 넣으면 코코넛 커피, 요거트를 곁들이면 요거트 커피로 변신한다.

베트남 연유라떼와 코코넛라떼

우리나라에서도 베트남 연유커피를 연상하게 하는 양산 제품이 캔으로 출시되었다. 연유커피에서 또 다른 커피가 파생되었는데, 바로 계란커피(까페쯩)다. 1946년 호텔에서 바텐더로 일하던 구엔반갱이 커피에 넣을 신선한 우유가 부족해 계란을 대신 넣었는데, 의외로 손님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계란커피를 상품화해서 커피점인 카페지앙(Cafe Giảng)을 창업했고, 이곳은 현재 하노이를 찾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될 정도로 명소가 되었다. CNN에서는 베트남에 가면 꼭 맛보아야 할 음료로 소개하기도 했다.

베트남 계란커피

2019년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하노이에서 개최되었을 당시에는 외국 기자들을 위하여 3천 잔의 계란커피가 준비되기도 했다. 계란커피 재료는 커피, 달걀 노른자, 설탕, 연유에 선택적으로 꿀, 버터, 치즈가 들어간다.

베트남의 커피 문화는 초기에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차츰 베트남 특유의 환경과 문화로 재창조 해냈다. 현재 베트남에는 다국적 커피 체인점보다 로컬 커피 체인점이 훨씬 많고, 가족 단위로 운영하는 소규모 커피점이 거리에 즐비하다.

불타는 태양을 가릴 수 없는 메꽁강 위에도 면포를 걸쳐놓은 큰 주전자와 연유, 아이스박스를 갖추고 자신만의 비율로 조합한 커피를 파는 조각배가 넘쳐난다. 베트남 로컬 커피 프랜차이즈 가운데 하나인 쯩응우옌(Trung Nguyên)은 커피 생산에서 로스팅, 커피숍 운영까지 총괄하는 베트남 최대의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다.

이곳에서 만든 인스턴트 커피인 G7은 우리나라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이밖에도 푹롱(Phúc Long), 하이랜드(Highlands), 카페지앙, 꽁카페(Cộng càphê) 등의 유명 프랜차이즈가 성업 중이다. 이 가운데 꽁카페는 2018년 7월에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꽁카페는 국방색 건물 외관뿐 아니라 낡은 책과 등잔, 촌스러운 꽃무늬천의 가림막, 작은 테이블과 군용 의자 등 인테리어와 소품이 마치 군대의 야전 막사 같은 느낌을 준다. 서비스 직원들도 군복을 입고 있다.

커피와 군대라니, 도대체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카페의 이름에 숨어 있다. 콩(Cộng)은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Cộng hoà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그리고 커피크림 위에는 베트남 국기의 별과 같은 별을 장식한다. 그렇다면 꽁카페는 베트남이 현재의 국가 체제를 완성하기까지의 지난했던 과정을 소소하게 기억하고 싶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꽁카페의 대표 메뉴인 코코넛 스무디 커피는 쓰고 달고 고소하면서도 얼얼하다. 베트남이 온몸으로 헤쳐온 사연 많은 현대사를 커피 맛으로 표현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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