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바로 알기⑩] 하롱베이 바위섬이 지폐에 담긴 이유

하롱베이 향로바위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1992년 개봉작인 영화<인도차이나>는 하롱베이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영화 속 하롱베이 풍경은 몰락한 응우옌왕조의 황녀가 선택한 사랑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승지인 하롱베이는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용이 내뿜은 진주들이라는 섬과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분명 바다지만 수많은 섬이 파도의 힘을 약하게 만들어 호수같이 평화롭다.

하롱베이는 1969개의 ‘섬’과 수많은 ‘바위’를 포함하여 3천 여개에 이르는 자연지형이 수면 위로 솟은 곳이다. 섬과 바위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에 따르면, 바위는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곳이다.

반면 섬은 영해 외에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가질 수 있지만, 바위는 영해만 인정된다. 곧 섬이 바위에 비해 정치적·경제적 지위가 한수 위라는 뜻이다. 굳이 이 사실을 되새기는 이유는, 하찮아 보이는 바위가 하롱베이뿐 아니라 베트남의 상징물로 뽑혔다는 사실을 알리고 위해서다. 이 바위는 베트남화폐 중 고액권인 20만동 짜리 지폐 뒷면에 등장한다. 무려 3천여개의 섬과 바위 중에 선택받은 단하나의 바위인 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바위길래 그렇게 대단한 걸까? 기암괴석이나 보물창고라도 연상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사실 이 바위는 다른 것보다 외모가 대단히 웅장하다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바위는 내면적 가치와 자태를 뽐낸다. 바로 베트남에서 조상에게 제를 올리는 향로와 닮았기 때문이다.

향로바위가 담긴 베트남 200000동 화폐

그래서 이 바위를 ‘향로바위’ 또는 ‘20만동바위’라고 부른다. 하롱베이 크루즈여행을 가면 반드시 이 바위 앞에서 베트남의 유교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조상을 섬기는 유교사상을 자연지형에 투사하여 신성하게 여기는 것이다.

향로바위를 살펴보면, 짙은 회색빛에 가로세로 틈(절리)이 있는데, 해수면과 맞닿은 부분은 잘록하여 무너질까 걱정이 된다. 썰물로 바다수위가 가장 낮아졌을 때는 더욱 아슬아슬하다. 반면 밀물로 수위가 높아지면 안정감 있게 수천년이라도 그 자리에 묵묵히 서있을 것 같다.

하롱베이의 수많은 섬과 바위의 기반암은 향로바위와 그 구조가 같다. 바위의 색이 회색인 것은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석회암이기 때문이다. 석회암은 바다생물의 껍질과 뼈가 두껍게 쌓여 형성된 퇴적암이다. 석회암이 나타나는 지역은 과거 얕은 바다였다. 지각변동이 일어나면 바다 속 지반이 융기하여 육지가 된다.

베트남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하롱(下龍)은 외적을 물리치라고 옥황상제가 보내준,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질학적으로는 ‘바다에서 올라온 용’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반의 고도와 습곡의 정도는 융기량에 따라 다양한데, 하롱베이는 융기량이 적었다. 이에 비해 닌빈성의 짱안경관단지는 좀더 융기량이 많고, 꽝빈성의 퐁냐케방국립공원, 하장성의 동반고원과 까오방의 지질공원은 융기량이 많아 고원이나 산악지대를 이룬다. 이러한 곳은 높낮이의 차이가 크지만 모두 석회암 용식지형이다. 즉 과거에 바다였던 곳이다. 또한 이들은 모두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석회암층이 융기하면서 여기저기 갈라진 절 리가 생기게 된다. 절 리가 촘촘하게 밀집되어 있는 곳에 지하수(탄산수)가 고여 오랜 세월 머물면, 석회암의 화학적인 분해 곧 용식이 일어난다. 석회암이 녹은 곳은 큰 구멍이 생겨 동굴이 되기도 하고, 석회를 녹인 물이 틈을 찾아 길을 내면 강이 된다.

물길은 평지를 찾을 때까지 흐르기 때문에계 단식폭포를 이루기도 한다. 그런데 절 리가 별로 없는 덩어리 석회암이나 지표로 노출된 석회암은 용식이 어려워 돌기둥이나 산의 형태로 남게 된다. 이를 탑카르스트라 하는데 석회암 지형 형성의 최종단계에 해당한다.

탑카르스트는 가파른 절벽과 평지가 대비되어 절경을 이룬다. 하롱베이의 바위와 섬이 바로 탑카르스트 지형에 속한다.

지구는 약 2만년전에 최후의 빙하가 물러가고 온난화가 진행되었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해서 약 6천년전에 현재의 해수면에 이르렀다. 그 결과 저지대에 위치한 하롱의 탑카르스트는 바닷물에 일부가 잠겼고 하롱만이 되었다. 그래서 하롱의 바다 위로 솟은 섬이나 기암괴석 그리고 큰 동굴 등은 머나먼 과거에 형성된 지형이다.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기나긴 지구의 시간을 상상해 본다면, 좀더 각별한 느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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