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바로 알기⑨] 베트남 숟가락 vs 한국 숟가락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외]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전통 식사예절에서도 공통점이 많다. 먼저 식사 순서에는 어른과 아이 등 상하 질서가 있다. 주식인 밥은 개인 그릇에 담고, 반찬은 공동의 그릇에 담아 나누어 먹는다. 식사 도구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며, 그 사용법의 역사와 법칙이 유구하다. 하지만 차이점도 몇 가지 있다.
첫째, 베트남에서는 식사 중에 보통 젓가락만 사용한다. 밥을 먹을 때는 밥그릇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입을 가까이 댄 채 젓가락으로 먹는다. 국도 밥그릇에 국물을 담아 젓가락으로 먹는다. 숟가락은 어린아이가 밥을 먹거나 소스를 먹을 때 가끔 쓰지만, 일상적인 식사에는 쓰지 않는 편이다.
상차림에 아예 숟가락을 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베트남은 숟가락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길이도 짧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전통 식사 예절은 국그릇이나 밥그릇을 들고 먹는 것을 금한다. 그리고 국과 밥은 숟가락으로, 반찬은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예절이다.
이처럼 숟가락의 기능과 존재감이 젓가락과 동등하므로 그 길이는 젓가락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베트남에서는 왜 숟가락을 별로 사용하지 않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쌀의 종류 때문일 것이다. 베트남 쌀(우리나라에서는 안남미 또는 알량미라고 부름)은 길쭉한 장립종인 인디카종으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의 90퍼센트가 선호한다. 이 종자는 밥을 지었을 때 찰기가 없어 숟가락으로 뜨면 잘 흘러내린다. 그래서 인디카종을 주식으로 하는 대부분 나라는 밥을 손으로 꾹꾹 눌러 흩어지지 않게 뭉쳐서 먹는다. 이러한 나라는 맨손을 가장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식사 도구로 여기는 문화를 갖고 있다.
베트남은 인디카 종이 주식이지만, 손이 아니라 숟가락과 젓가락을 쓰는 드문 경우에 해당하는데, 아마 유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쌀은 짧은 단립종인 자포니카종으로, 밥을 지으면 차진다. 이 종자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동부 아시아에서만 인기가 있다. 차진 밥을 숟가락에 떠서 식탁에서 먼 입까지 옮겨도 흐트러지거나 흘러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굳이 밥그릇을 들고 먹지 않아도 된다.
둘째, 베트남에서는 식사하기 전에 나이가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예를 표한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먼저 진지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를 한 다음에 아빠와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그다음에 삼촌이나 언니, 오빠에게 인사를 한다. 식사 인사를 장유유서에 따라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어른이 먼저 식사 시작을 알리는 것과 반대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잔칫날처럼 사람이 너무 많은 경우에는 한꺼번에 “우리 온 가족, 식사하세요”라고 말해도 된다.
셋째, 밥을 풀 때 절대 한 번만 푸면 안 된다.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로 나누어 담아야 한다. 한 번 푸는 것은 망자(亡者)에게 하는 예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밥을 풀 때 그릇에 가득 푸지 말고 3분의 2 정도만 퍼야 한다. 밥그릇은 우리나라보다 작은 편으로, 보통의 성인 남자는 한 끼에 일반적으로 3~4그릇을 먹는다.
넷째, 신 과일이나 새콤한 과일은 특별한 소금에 찍어 먹는다. 소금과 고춧가루, 조미료(약간), 설탕(약간)을 잘 섞어서 한번 볶으면 짠맛, 매운맛, 단맛으로 입맛을 자극하는 특별한 소금이 탄생한다. 이 소금을 파인애플, 녹색 망고, 구아바 등에 찍어 먹으면 신맛은 덜하고 달콤함은 더욱 진해져 조화로운 맛을 낸다.
다섯째, 둥근 쟁반에 음식을 차려서 식탁에 그대로 올려놓고 식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쟁반은 음식을 식탁으로 나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에 비해 베트남에서 둥근 쟁반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보통 베트남 사람은 아침에 쌀국수, 빵, 찹쌀밥 같은 음식을 사먹고 점심은 회사나 학교에서 먹는다. 그리고 저녁에서야 온 가족이 모여 같이 식사를 하는데, 둥근 쟁반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아 그날 하루 일어났던 일상을 맛있는 음식과 함께 나눈다. 즉 둥근 쟁반은 서로를 바라보게 하며 가족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밖에 베트남에서는 식사 중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식사할 때 젓가락을 밥그릇에 세워서 꽂지 않는다.
이것은 향을 피우는 것과 비슷한 행동으로, 망자에게 밥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젓가락이나 숟가락으로 밥그릇을 두드리지 않는다.
이는 주변의 배고픈 귀신들을 불러 모으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셋째, 밥알을 남기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가서 생전에 남긴 쌀알 수의 10배에 해당하는 구더기를 먹어야 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넷째, 생선을 뒤집지 않는다. 이것은 수상가옥이 많은 어촌마을에 해당하는데, 생선이 뒤집히는 것은 배가 뒤집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선의 뼈를 걷어내고 먹어야 한다.
다섯째, 식사를 할 때 다리를 떨지 않는다. 이는 예의가 없는 행동이고, 불안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섯째, 자신이 먹던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서 상대방에게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상대방에 대한 친절의 표시다.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주고 싶다면 젓가락 반대편을 사용해 음식을 권해야 한다. 음식을 받는 쪽에서는 밥그릇을 들고 받아야 하며 절대로 젓가락으로 받으면 안 된다. 이는 시신을 화장한 후에 망자의 뼈를 주고받는 행동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베트남의 식사 문화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많다. 식사 문화에 대해 그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예법에 어긋나지 않게 실천한다면 상대를 존중함과 동시에 친밀해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