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삼일절 기념식이 특별했던 몇가지 이유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올해 삼일절 기념식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개회사를 <태백산맥>의 조정래가 읽은 것이 좋았다. 또 ‘독립선언서’를 독립선언과 연관 있는 5개국어 원문으로 읽은 것도 좋았다.
독립선언서 원문은 한문을 학습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무슨 암호와도 같이 난해하다. 반대로 원문을 암송하고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우리말로 바꾼 독립선언서는 엄숙하고 비장悲壯한 맛이 적다. 두 가지를 병행하기 위해 자막을 넣은 것이 좋았다. 장소가 기미독립선언에 참여한 배화여고인 것도 의의가 있다.
일본어 독립선언서를 귀화인 호사카 유지가 읽은 것은 적절했다. 일본말과 한국말의 어감을 그대로 살리기에 그만한 사람이 쉽지 않을 것이다. 1919년 당시 독립선언서를 읽어 본 일본 지성인들은 이러한 정신과 문장을 가지고 있는 조선을 식민지화했다는 것이 잘못이었다고 했을 정도였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감동한 일본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어 독립선언서는 중국인이 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한국에 유학 온 중국유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이들을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어 독립선언서는 삼일운동을 증언하는 할아버지부터 3대를 이 땅에 살아온 인요한 박사가 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러시아어 독립선언서를 최일리아의 손자가 읽은 것은 뜻이 깊다. 임정의 뿌리 중의 하나인 대한국민회의가 출현한 것이 러시아의 극동 블라디보스토크다.
삼일운동은 세계 혁명운동사에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 세계대전 이후 피압박 민중의 독립운동 가운데 첫 봉화였고, 순수한 이상이 거대한 민중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19년 4월 인도에서 시작한 간디의 비폭력저항운동이 삼일운동을 따랐으며, 1920년 중국의 5·4운동 촉발에도 영향을 주었다.
대통령 기념사 가운데 ‘한국전쟁’ 용어가 나온 것은 착오다. 6·25사변, 6·25동란, 6·25전쟁 등 용어가 6·25전쟁으로 통일된 것도 오래 됐는데, 기념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를 교정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교정은 한 사람이 여러 번 보는 것보다도 여러 사람들이 보는 것이 틀림이 없다.
김구 선생과 유관순, 홍범도 장군이 만세삼창을 함께 부른 것도 좋았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김좌진의 청산리전투를 기억한다. 그러나 독립군의 국내 진입작전을 선도한 것은 홍범도였다. 임정은 봉오동 승첩을 ‘독립전쟁의 제1회전’이라고 선언하였다. 일제는 봉오동 참패에 큰 충격을 받고 대규모 병력을 간도에 투입했는데 김좌진이 이를 청산리에서 요격하여 대첩大捷을 이룬 것이다.
1945년 해방이 연합군에 의해 이루어진 것만이 아니며, 1937년 김일성의 보천보전투가 무장항쟁의 전부가 아니다.
영국의 경우 각종 행사는 철저히 기획된다.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은 세계의 탄성을 자아냈다. 세계에 퍼져 있는 영연방 시민들은 이를 통해 영국의 역사와 문화를 호흡하며, 이는 영국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마찬가지로, 삼일절 기념식을 한국인의 역사의식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